원광중학교장

예로부터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이 있다. 먹는 것을 두고 야박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 어릴 적, 아버지가 동네일을 보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침마다 손님이 찾아왔다.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부모님은 밥때에 찾아온 손님을 그냥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 당시 아침에 고샅에서 어른을 만나면 “안녕히 주무셨어요?” 대신 “진지 드셨어요?”가 인사말이었다. 커가면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밥 한 끼 하자.”라며 친근함을 나타냈다. 이 모든 것이 밥의 소중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어릴 때 5남매가 부모님과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밥상머리에서 반찬 투정을 하거나 장난을 치면 아버지의 엄한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다. 어쩌다 밥알을 흘리기라도 하면 재빨리 집어서 입속에 넣었다. 쌀 한 톨마다 부모님의 땀방울과 고단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대부분 맞벌이를 하며 한두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식탁에서 가족이 함께 아침밥을 먹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 아침을 거르고 사무실 근처 편의점 신세를 지는 직장인이 많아졌다. 등교 시간에 교문 앞에서 아침맞이를 한 지 오래되었다. 학교 앞 매점에 들러 빵이나 김밥을 입에 넣으며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 수가 점차 늘고 있다.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밥 대신 오로지 허기를 면하기 위한 것이다.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바쁜 현대인에게 돈독한 가족 관계가 사라진다. 한 톨의 쌀이 얼마나 소중한지 배우지 못한다. 급식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몇 수저 뜨다 모조리 잔반통에 넣는다. 한 그릇의 밥에 감사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하루 세 끼를 먹는다. 누구나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똑같은 쌀로 지은 밥을 먹지만 어떻게 쓰이는가에 따라 밥의 의미가 달라진다. 아픈 사람을 만나면 끼니를 거르지 말라고 한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에게 부모님은 밥은 제때 먹고 다니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는 짓이 시원찮은 사람에게는 이래서 밥이나 빌어먹겠냐는 핀잔을 한다.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밥값을 못한다고 한다. 서로 자기 앞에 큰 감을 놓으려고 하는 경우를 흔히 밥그릇 싸움이라고 한다.

옛 코살라 왕국에 파세나디 왕이 있었다. 그는 식탐을 이기지 못해 매끼 두 되 반의 쌀밥과 엄청난 양의 고기반찬을 먹었다고 한다. 몸이 비대해져 혼자서 일어서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을뿐더러 각종 질병에 시달려야 했다. 그의 고통을 알아차린 부처님께서 게송을 내려주셨다.

“건강하고 편안하게 오래 살려면 음식을 먹을 때 주의하여 스스로 식사량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네. 그러면 늙음과 질병이 늦게 온다네”

파세나디 왕이 게송을 실천한 덕분에 몇 달이 지나자 한 접시의 음식으로도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만성피로와 불면증, 땀띠 등 수많은 질병이 없어지며 건강까지 되찾게 되자 파세나디 왕은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해 예배를 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음식 먹을 때마다 마음을 챙겨 중도의 법을 알게 하셨으니 부처님께서는 현세와 후세의 이익을 함께 주셨습니다”

먹을 수 있다고, 먹는다고 다 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식탐을 줄이지 못한다면 육체의 건강을 잃고 결국 정신까지 황폐해진다. 부처님의 게송을 실천한 파세나디 왕처럼 어느 정도 배가 불렀을 때 수저를 놓아야 한다. 코로나19로 여기저기서 삶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 사람을 생각하면 밥그릇이 정말 소중하고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 수 있다. 요사이 밥그릇 싸움하느라 세상이 온통 소란하다. 어려운 이웃을 나 몰라라 하고 더 큰 밥그릇을 차지하기 위해 으르렁대는 모습은 훗날 지울 수 없는 못자국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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