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도 노릇노릇하던 나뭇잎 생기 되찾아 사람들 반겨

호남고속도 건설로 이주했던  마을주민들 보호수보며 옛 추억 되새겨

“나무를 처음 봤을 땐 주변에 잡목이 우거지고 잡초가 무성해 보호수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한 여름이 되어서도 나뭇잎이 노릇노릇 제색깔을 내지 못했어요. 지금은 생기를 되찾아 사람들을 반기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6년째 왕궁면 동용리 학제마을 보호수를 관리하고 있는 이희익(74) 이완순(72) 부부.

부부가 보호수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15년 초봄 이 마을로 귀촌하면서다. 부부는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거목 보호수가 집 앞에 우뚝 자리하고 있는 것이 행복했다. 그러나 보호수는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채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말라 있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부부는 수 백 년 마을을 지켰을 보호수가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틈틈이 잡목과 잡초를 제거하고 풀이 자라는 것을 막으려 꽃을 심었다. 5~6월에는 자주색 붓꽃이, 요즘은 붉은색 꽃봉우리를 한 멘드라미가 반기다.

부부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쯤 일어나 보호수가 이상이 없는지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멧돼지와 고라니 등 야생동물들이 하루가 멀게 찾아와 땅을 파고 농작물을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태풍으로 제법 큰 나뭇가지가 부러져 마음을 아프게 했다.

“보호수다보니 잔가지 하나 정리하는 일도 쉽게 하지 않아요. ‘잔가지 정리하겠습니다. 노하지 마세요’라고 나무에 알린 뒤 큰절을 한 다음에 작업을 하죠.”

남편 이 씨는 사랑스런 손자·손녀를 돌보듯 보호수를 관리한다.

부부의 정성 덕분에 보호수는 매년 푸르름을 더해가고 있다. 보호수가 제 모습을 찾고 주변이 말끔해지면서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특히 보호수 주변을 기점으로 둘레길 산책로가 만들어지면서 사람도, 차량도 접근하기 어려웠던 보호수 주변 도로는 마을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학제마을 보호수가 사람들의 눈에서 멀어져 간 것은 마을을 가로질러 호남고속도로가 나면서다.

보호수 주변에 살던 30여 가구가 마을을 떠나면서 보호수만 홀로 남게 됐다. 더구나 호남고속도로가 보호수를 가려 눈에 보이지 않는데다, 마을주민들의 고령화로 점점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마을을 떠난 분들이 고향이 그리워 자주 찾아오세요. 자신이 살던 집은 사라지고 터만 남았지만 보호수를 보고 반가워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죠. 이 분들이 고향의 향수를 달랠 수 있도록 보호수가 큰 역할을 하는 것같아요.“

부부는 보호수를 잘 관리해줘 고맙다고 인사하는 옛 마을주민들을 보며 더 열심히 관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마을 송선규 이장은 “보호수를 살리려 호남고속도로 노선을 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학제마을 보호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속도로 가까이에 있는 보호수다. 귀촌한 부부가 마을 사람들을 대신해 관래해 주고 있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학제마을 보호수는 느티나무 수종으로 풍년을 기원하면서 목신제를 지내던 나무로 여름철엔 주민들의 휴식처였다. 수령 300여년, 수고 18m, 나무둘러 4.3m로 지난 1995년 보호수로 지정됐다.

송태영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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