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살고 싶은 낭산을 만드는 작은도서관의 도전

윤찬영 문화마을29 다이끄미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끝 모르게 추락하고 있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1명보다도 낮은 0.75명을 기록했다. 문제는 추세다. 2018년 처음 1명 밑으로 떨어진 뒤 겨우 4년 만에 0.7명대로 떨어졌으니 ‘추락’하고 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여기에 더해 수도권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다 보니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또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아이들을 찾아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시내로, 더 큰 도시로 가야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부모의 기대 탓이다.

익산시 낭산면에는 토요일마다 아이들이 몰려드는 곳이 있다. 낭산작은도서관이다. 2010년 전라북도에서 작은도서관들을 조성할 때 비슷한 처지에 놓인 왕궁, 춘포와 함께 이곳 낭산 시골마을에도 한 곳 생겼다. 시 소유 복지회관 1층 한 켠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덧 12년을 꽉 채워가는 이곳을 9년째 지키고 있는 이가 백승진 실무자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성적 올리는 데만 목을 매는 것 같아 회의가 들더라구요. 다른 일을 찾아보다 작은도서관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공고를 봤어요. 시골에 가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기로 마음먹었죠.”

낭산까지 가는 번듯한 길도 없던 2014년, 흙먼지를 날리며 차로 한참을 가야 했지만 그는 운명처럼 끌렸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것도 한몫했다. 남들은 말렸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열악했다. 시의 보조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 보니 인건비가 형편없었고, 실무자들이 1년을 못 버티고 떠나기 일쑤였다. 이대로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여러 지원사업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

“시에서 주는 운영비로는 프로그램을 1년 동안 운영하기도 힘들어요. 시내에 있는 자원활동가들을 불러오기도 했는데 꼬불꼬불한 시골길을 한참을 달려온 사람한테 강사비도 줄 수 없어서 너무 미안했어요. 그래서 공모사업에 뛰어들기로 했죠.”

사업비를 벌어와 없던 일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으니 고생을 사서 했던 셈이다. 몇 번의 도전 끝에 2016년 처음으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고 농어촌희망재단이 주관한 ‘농촌교육문화복지 지원사업’에 뽑혔다. 1,400만 원씩, 그것도 3년이나 지원하는 제법 큰 사업이었다. 그는 사업비로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참여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기획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자 ‘작은도서관에서 이런 일도 하네’ 하면서 주민들이 찾기 시작했다. 그 3년을 지나오는 사이 작은도서관도 부쩍 자랐다.

“주민 대부분이 농사일을 해요. 주말에도 바쁘죠. 또 할아버지 할머니랑 사는 아이들도 있어요. 학교에 안 가는 토요일에 문을 열면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오죠. 또래들하고 어울려서 책도 읽고, 체험학습도 갑니다. 도심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도 주말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 사이 아이들도 훌쩍 자라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다. 이제는 언니 오빠들 따라 기저귀 차고 오던 아이들이 도서관을 채운다. 하지만 해마다 아이들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처음 왔을 때 80명에 달했던 마을 초등학생 수는 9년 사이 35명 남짓으로 줄었다. 4학년까지는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다가도 중학교 입학을 앞둔 5, 6학년이 되면 많이들 떠난다고 했다.

자식에게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은 부모 마음을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는 그런 이유로 아이들이 이곳을 떠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익산시문화도시지원센터의 ‘문화마을29 컬처랩 - 익산을 부탁해’ 사업에 ‘낭산 마을문화로드맵’ 프로젝트로 지원했다. 익산 북부권역인 낭산면의 문화 공간과 자원을 발굴하고 체험하면서 마을문화로드맵(지도)을 그려보는 프로젝트로, 아이들이 마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도록 함으로써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가 담겼다.

“우리 아이들한테 ‘낭산도 이렇게 살기 좋은 곳이다, 이곳에서도 얼마든지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더 나아가 앞으로 너희들이 이곳에 남아도 괜찮은, 살만한 곳이라는 믿음도 주고 싶었죠.”

호남승마클럽, 로뎀아뜰리에, 낭산다례원 등 낭산 곳곳에 흩어져있는, 교육 가치가 높은 자원들에 아이들과 함께 찾아가 체험해보면서 널리 알리자는 뜻이었다. 모두 돌아본 뒤에는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지도를 만들었다. 낭산을 알리는 첫걸음인 셈이다.

“이번 낭산로드맵 프로그램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0명이 두 달 동안 꾸준히 참여했어요. 이 마을에 사는 아이들 가운데 3분의 1이 주말마다 찾아왔으니 참여할 수 있는 아이들은 다 참여했다고도 볼 수 있어요.”

멀리 사는 여행객들을 불러들이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함께 찾아간 부모들의 의견도 모아봤다. 가령, 백제 때 지은 낭산산성은 길이가 무려 870m에 달하는 산성으로 전라북도 기념물로도 지정돼있지만 제대로 된 설명이나 쉴 곳이 없어 찾아오는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다. 그는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신경 써서 가꾼다면 좋은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다.

“낭산로드맵 체험을 하면서 낭산에 대해 더 알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한 번 더 기회가 있다면 그땐 낭산의 역사를 찾는 게 아니라 직접 낭산의 역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너무 재밌었고 다음에도 또 하고 싶습니다.” (낭산초 6학년 최서연)

“승마 체험이 너무 재미있었고, 친구들과 맛있는 간식과 점심도 먹을 수 있었어요. 점심 만들어주신 엄마, 쌤들게 감사합니다.” (낭산초 4학년 진희선)

그는 어떤 프로그램이든 더 많은 아이들이 참여했으면 하는 마음에 낭산 지역 초등학교 두 곳도 부지런히 찾아다니면서 교장에게 도와달라 부탁한다. 그런 절실함을 알아주고 간식을 넣어주거나 교육에 필요한 악기를 모두 사준 교장도 있었다. 그렇게 힘을 보태준 이들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작은도서관은 리모델링이 한창이다. 작은도서관 옆에 붙은 공간을 스테이로 탈바꿈하고 있다. 전라북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익산에 놀러온 여행객들이나 친척집을 찾아온 가족들이 하루 이틀 머물다 갈 수 있도록 8명이 묵을 만큼 제법 큰 숙소다. 바로 옆에 작은도서관이 있으니 아이들을 위한 북스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문을 연 지 10년이 지나 리모델링 비용이 나왔는데 특화사업을 스테이로 정했어요. 주민자치위원회와 협의해 지역 주민들이 관리를 도와주기로 했죠.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리모델링 비용까지만 지원을 해주고 숙소에 들어갈 냉장고 하나, 이불 한 채 살 수가 없더라구요. 12월에 문을 열려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해요.”

최근엔 아이들에게 다도로 인성교육을 하는 낭산다례원과도 MOU를 맺고 앞으로 5년 동안 여러 사업들을 함께 해나기로 했다. 또 비슷한 처지에 놓인 몇몇 작은도서관 실무자들과 비영리단체도 만들었다. 작은도서관들끼리 힘을 모아 더 큰 일을 해보자는 뜻이다.

“뭔가 감당도 못하면서 일을 자꾸 저지르고 있다”며 웃는 백승진 실무자, 낭산작은도서관이라는 자그마한 틀을 뛰어넘어 대담한 도전을 이어가는 그가 바꿔 갈 낭산의 미래가 궁금하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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