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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희 문학산책 - 청산도유은희 시인의 문학산책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3.03.27 08:55

청산도  

너와 외딴섬 빈집에 들어

나란히 좀 슬어가는 기둥처럼 늙어가도 좋겠다

처마밑은 식솔 서넛 등 뒤에 숨기고 온

가난한 참새 가장에게 내주고

마당가 도구통은 비구름에게 내주고

통새 옆 감나무는 바람에게 내주고

눈 깊은 우물은 잠 못 이루는 별들에게 내주고

 

잊혀져가는 이름 몇 부르다 까무룩 잠들면

창호지 문살마다 밤새 그 이름 푸른 귀로 펄럭일거야

생쥐가 고구마를 사각사각 갉아먹고 달아나는 소리로

어제의 어제는 우릴 빠져나가겠지

점점 서로의 안쪽으로 굽어가는 너와 나는

두 자루의 호미처럼 이마를 맞대고 누워

숨소리를 죽이고 간밤의 생쥐 발소리를 기다리겠지

그 간지러운 고요를 머리끝까지 당겨 덮고

들키지 않게 키득거릴거야

 

그새 살이 오른 배추벌레 느릿느릿 배 밀어가는 소리로

해가 드는 마루끝에 상다리를 펴고 앉아

가시 바른 햇살 한 점 너의 수저에 올리리

 

못 하나 박지 않은 집이면 더욱 좋으리

나무와 나무의 깍지로 백년을 사는 집처럼

우리 그렇게 늙어가도 좋겠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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