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현동 고현초등학교앞 고현문구. 60㎡(약 18평) 규모의 매장에는 노트와 연필 등 학용품과 축구공, 간식 거리 등 1천여 품목이 빼곡하다.

가랑비가 내린 지난 달 30일 오후 하교를 마친 학생들이 가뭄에 콩 나듯 고현문구에 들러 필요한 학용품과 문구를 구입하는 모습이다.

고현초등학교 주변 유일한 문방구인 고현문구를 31년째 지키고 있는 홍경오·황순덕 부부(72)는 “요즘은 근근이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부는 지난 1991년 홍 씨의 6촌 누나 부부가 운영하던 고현문구를 인수했다. 완주에 살던 부부는 고현문구가 목이 좋아 열심히 일하면 4남매와 먹고 살 수 있을 자신감이 있었다.

부부는 열심히 일했다. 아침 7시 30분에 문구 문을 열고 밤 9시에 닫았다. 겨울에 밤 9시는 한 밤 중. 이 시간에도 손님들이 찾을 정도로 문구는 잘됐다.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에는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당시 고현초등학교 주변은 허허벌판과 다름없었다. 학교 앞 이화아파트가 자리한 부지는 논이었다. 이 곳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끓여 먹기도 했다. 학교 뒤에 자리한 고려아파트 부지는 야산이었다.

주변에 마땅한 가게가 없던 시절 학생들은 고현문구로 줄을 이었다. 고현문구는 슈퍼로 사업자를 등록해 문구뿐만 아니라 빵·컵라면·닭꼬치 등 학생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팔 수 있었다.

부부는 덕분에 선현(교사)·승현(교도관)·근현(교도관)·창훈(농협) 4형제를 남부럽지 않은 사회의 동량으로 키웠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문구사업은 외환위기(IMF)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학교에서 급식을 실시하고, 웬만한 학용품을 지급하면서 학생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 또 900여명에 이르던 학생수가 3분의 1 수준인 350여명으로 준 것도 큰 타격이다. 한때 5곳이던 문구는 하나 둘 문을 닫고 떠났다.

부부가 고현문구를 꿋꿋이 지키고 있는 것은 아이들과의 즐거운 만남과 임대료 부담이 없기 때문.

부부는 “초창기 아들 또래였던 학생들이 어느새 손자·손녀 뻘이 되었다”며 “아이들을 보면 예쁘고 귀여워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말한다.

부부는 손자·손녀 같은 아이들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하려 노력한다. 방학을 마치고 등교하는 학생들에게는 “키도 많이 크고 튼튼해 졌네”라고 덕담을 건넨다.

얼마 전에는 우산이 없는 학생에게 우산을 들려줬다. 며칠 후 학생 엄마가 찾아와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에 부부는 문구를 지키는 보람을 느꼈다.

모현동 터줏대감인 부부에게는 요즘 소소한 재미가 있다. 바로 학창시절을 회상하려는 졸업생들의 발길이다.

아이를 업고 온 졸업생은 “사모님이 구워준 닭꼬치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며 부부와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난다.

자녀가 고현초등학교에 다닌다며 인사 오는 졸업생도 있다.

부부는 모두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지만 찾아준 졸업생들과 이야기꽃을 피운다.

부부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고현문구를 운영하려 한다.

부부는 “자녀들이 이제 쉬라고 한다”며 “2년 전 문구를 정리하려다 포기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미소 짓는다. 

송태영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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