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나무어린이집 원장

어느 날 딸아이가 베짱이처럼 살고 싶다며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개미와 베짱이의 현대적인 해석이 있기는 하지만 베짱이의 삶이 외롭고 고단한 삶이라는 걸 알아버린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며 딸에게 물었다.

“베짱이처럼 사는 건 뭐야?”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삶이지, 프레드릭처럼!”

프레드릭은 딸아이가 어렸을 때 함께 즐겨보던 그림책의 주인공이었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책 대부분은 정리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몇 권의 그림책은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잠시 대화를 멈추고 딸아이가 책꽂이에서 프레드릭을 꺼내 보였다.

붉은 양귀비꽃을 들고 수줍게 웃고 있는 프레드릭을 오랜만에 펼쳤다. 내용은 익히 다 알고 있었지만, 그림책 속에서 나에게 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궁금해져 천천히 그림과 글을 다시 읽어갔다. 추운 겨울을 위해 열심히 열매를 모으던 들쥐들이 생각에 잠겨 있는 프레드릭에게

‘넌 왜 일을 안 하니’라고 묻자 프레드릭은 햇살을 모으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말이 나에게는 일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들렸고 딸은 어떤 햇살을 모으고 싶은지 궁금했지만, 끝까지 그림책을 읽어갔다.

추운 겨울 모아놓은 열매들이 다 떨어져 춥고 우울했던 들쥐들은 프레드릭의 햇살 이야기를 들으며 따뜻함을 느꼈고 마음에는 파란 덩굴 꽃과 노란 밀짚 속의 붉은 양귀비꽃들이 선명하게 피어났다. 들쥐들은 손뼉을 치며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라고 외쳤고 프레드릭은 “나도 알아”라고 수줍게 말하며 이야기는 끝이 났다.

누군가 자신을 시인이라고 말해주기 전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던 프레드릭이 눈에 들어왔다. 열매 대신 모으고 싶은 딸아이의 햇살은 그림이었다.

그런 딸의 마음을 알게 되자 걱정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빛깔과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의 추위를 햇살처럼 감싸주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올가을 딸아이의 전시회를 통해 나는 딸이 모은 색깔들을 볼 수 있었다.

전시회를 보러 온 친구들에게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던 딸을 보며 수줍은 화가 프레드릭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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