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문화원 원장 시인 별빛정원 대표

이 동네 저 골짜기 생각도 다르고, 보고픈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다른데

나이 하나 비슷하다는 이유로 짝꿍이 되고, 동무가 되었다.

칠푼이, 팔푼인 줄 알았는데 보석이고, 꽃이고, 물건이다.

공부라는 걸 꼭 해야 할 이유도, 배워야 할 필요도 못 느끼고

배고픔만 해결할 수 있으면 그만이던 그 시절 그때 까막눈이나 뜨여보자고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들었지.

어중이들은 낯선 교실이 싫었고, 떠중이들은 선생님이 무서웠고

사내놈들은 궁상맞음이 저랑 똑같은 옆에 앉은 계집애가 궁금했고

지지배들은 코 찔찔이 머슴애가 싫었다.

너네 집이 어디냐고, 느그 아부지 뭐하시냐고, 묻지도 캐보지도 않고 동무가 되어 준

너.

그, 너가.

갸, 내가.

이렇게 예순을 훨씬 넘긴 모진 세월을 안고지고 이름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르고

친구 먹었던 그때처럼

니 남편 뭐 하냐고, 니 마누라는 그대로 그 여자냐고 물어 볼 것도 없이

지금도 우린 그때처럼 친구 아닌가!

잘난 것이 무엇이냐? 잘 사는 것이 무엇이냐?

지금까지 살아온 내가 잘난 것이고, 지금까지 살아 낸 네가 잘 사는 것 아닌가.

고생이 고생인 줄도 모르고 살았고, 가난도 배고픔도 숙명으로 여기고 자랐지.

맨 몸으로 세상과 맞섰고, 맨 손, 맨 주먹으로 맨션도 샀고

지금의 내가 되었고 네가 되었다.

우리의 그 말없는 세월들은 우리만이 통할 수 있는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아닌가?

우리의 어깨가, 마디 긁어진 두 손이, 헐렁해진 두 다리가, 깊이 패여 굵어진 주름이

어제를 일궈 오늘을 만들어 낸 증표 아닌가!

자식이 또 자식을 낳아 할미가 되고 할배가 되었지만

눈물 콧물 웃음보따리 섞어 그날의 세월탕을 끓여보자.

우리 땅 어느 곳, 어느 터, 어느 낯선 동네가 너와 나의 또 다른 고향이 되었고

삶의 터가 되었지만

친구여 그대가 진정 나의 고향이고, 역사이며, 내 이야기 속의 주인공.

세월을 알고, 세상을 알고, 하늘을 알고, 바람을 알아

가장 살기 좋은 나이, 가장 사랑하기 좋은 나이, 이제 겨우 사는 맛을 알아낸 나이

부러움이 되고 따름이 되고 이정표가 되어

더는 늙지도 말고, 아프지도 말고, 시들지도 말고, 죽지도 말고

어깨 펴고, 허리 펴고, 인상 펴고, 주름 펴고, 세월 펴고 일어나

일천구백 육십 오년 처음 만난 궁민핵교 ‘올해는 일 하는 해’ 그때로 돌아가자.

봄 속의 화려한 꽃 보다 가을 단풍이 더 아름답지 않더냐?

그 은은한 향이 더 끌리지 않더냐?

그때의 봄 꽃송이가 이렇게 흐드러진 단풍이 되었다.

우리 색드러지게 물들고, 다시 걸판지게 피어

꽃보다 아름다운 그때가 되어보자.

세상을 물들여보자.

벗이여

내 동무여

너는 동창이기에 앞서 나의 또 다른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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