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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웅의 이름이야기 - 광개토대왕·김대성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4.05.19 12:16

   
▲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고구려의 제19대왕으로 제18대 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나면서부터 체격이 크고 씩씩하며 대담한 뜻이 있어 이름을 담덕(談德)이라 했다. 12세에 태자로 책봉됐으며, 고국양왕이 재위8년에 죽자 왕으로 즉위해 연호를 영락이라 하고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불렀다.
원년 7월에 남쪽의 백제를 정벌해 10여 곳의 성을 함락 시켰다. 9월에는 북쪽 거란을 정벌하고 남녀 500명을 사로잡았다. 또 거란에 잡혀 갔던 본국의 백성 1만 여명을 데리고 왔다. 군사 4만을 이끌고 석현, 관미성과 미수성(인천) 58개의 성을 빼앗았다. 한강 이남의 지역 까지 빼앗긴 백제는 큰 타격을 입고 있었다. 뜻밖에 서쪽 후연의 공격을 받아 신성, 남소의 두성과 7백리에 이르는 넓은 땅을 빼앗겼다. 영락12년에 대왕은 6만의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요동정벌에 나섰다. 후연의 모용귀는 맹열하게 대항했지만 요동성을 뺏기고 도망쳤다. 영락18년에 왕자 거련(장수왕의 이름)을 태자로 삼았다. 20년에는 동부여를 정벌하니, 이 소식을 들은 이웃 국가들도 자진해서 항복했다. 영락22년 가을, 39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왕호를 광개토대왕이라 했다.
김대성(金大城).
신라 경덕왕 때 재상으로 중시 문량(文亮)의 아들로 태어났다. 삼국유사에는 모량리에 경조(慶祖)라는 가난한 여인에게 아이가 있었는데 이마가 펑퍼짐해 성(城)과 같으므로 대성이란 이름을 지었다. 대성이 고용살이로 얻은 밭을 흥륜사의 점개(漸開)라는 스님에게 보시(布施)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날 밤 국상 김문량의 집에 하늘에서 외침이 있었다. “모량리 대성이란 아이가 너의 집에 부탁하노라.” 김문량의 아내는 이날 임신해 아이를 낳았는데 손을 꼭 쥐고 펴지 않았다가 7일 만에야 폈다. 그 손에는 대성(大城)이라는 두 글자가 새긴 김간자(金簡子)가 있었다.
대성이라 이름을 짓고, 경조도 데려다가 함께 봉양했다. 그는 745년에 중시를 거쳐 대광보국숭록대부에 이른다. 751년에는 국가의 안녕을 위해 불국사, 석불사, 장수사 등 절 건립을 발원해 설계와 건축, 조각 공예 및 가람 등 전반에 관여했으나 생전에 완공하지 못했고, 그가 죽은 후에 조정에서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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