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익산교육지원청 교육장

그렇지만 나 어릴 적에는 신사용 자전거 한 대 가지는 것도 꽤 부자라야 가능했다. 당연히 자전거는 지금의 승용차보다 더 신기한 존재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 자전거를 타고 싶은 욕구가 얼마나 강했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까만 교복을 입고 교모를 쓰고 자전거 위에 올라탄 형들은 참으로 눈부셨고,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내게도 자전거를 타 볼 기회가 왔다. 그리도 부러워했던 자전거 탈 기회를 동네 형이 준 것이다. 학교운동장에서 처음으로 탔는데 뒤에서 잡아주는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반듯이 가기가 어려웠다.

올라타기도 힘들었거니와 비틀비틀하면서 도저히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비틀거리며 운동장을 두어 바퀴 돌고나니 등이 땀범벅이 되었고, 뒤에서 잡아 주던 형이 손만 놓으면 어김없이 운동장에 자전거와 함께 한 몸이 되어 넘어지곤 하였다.

다음 날도 가슴을 두근거리며 자전거를 탔다. 손잡이를 꽉 잡고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나는 소리쳤다. “형! 놓지 마! 놓으면 안 돼!” 그러면 뒤에서 밀어주는 형도 역시 온 몸이 땀으로 젖은 채 계속 대답했다. “그래! 안 놓아! 걱정 말고 페달만 밟아!” 그래도 불안한 나는 “형! 절대 놓지 마!”를 반복했고 형은 “’그래! 안 놓아”를 또 반복했다.

그렇게 한참 달리다 뭔가 허전해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형은 저 뒤에서 “ 이젠 됐다! 너 혼자도 해 낼 수 있으니 이젠 됐다.” 라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최고! 라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배웠다.

그렇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기대한다면, 먼저 그를 믿어야 한다. 믿지 않으면서 기대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기대감의 밑바탕에는 믿음과 사랑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말문을 열면서, 여기서 교육자로서의 몇 가지 가르침을 배우기 시작했다.

첫째, 그러고 보면 내게 자전거를 가르쳐준 동네 형은 내게 큰 스승이다. 교사자격증은 없었을지라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터득하고 실천한 때문이다. 자신이 없을 때는 기초를 가르쳐 주고, 위태로운 상태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뒤에 있다는 든든한 믿음을 주고, 그리고는 가르침을 절제하며 스스로 서게 해주었다.

세월호 참사는 자질이 부족한 리더였으며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무책임하고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과 판단으로서 엄청난 희생자를 낸 조직이 그 부패함을 하나 둘씩 드러낼 때, 우리 조직 또한 부패하지 않았는지 그 안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둘째,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도 역시 어떻게 하면 쉽게 올라타고, 어떻게 해야 두 바퀴로 된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균형을 잡을 수 있는지, 멈출 때는 어떻게 해야 넘어지지 않는지, 비탈길을 내려갈 때는 핸들의 방향과 브레이크를 어떻게 조절해야 넘어지지 않는지 스스로 깨달아 갔다.

이번 참사를 통해 배가 침몰하는 위기에 직면했을 때,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지, 이렇게 많은 승객들이 어떤 방법과 순서를 지켜가며, 어떻게 해야 보다 더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될지 등 가장 기초적인 지식이면서도 살아있는 현장체험형 학습을 더 많이 아이들과 더불어 진행해야겠다는 교육적 방향을 설정하게 만들어 주었다.

셋째, 직접 실연하거나 함께 시도해 보면서 기회를 주어야 한다. 동네 형은 이미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매일 실연해 보여주었다. 그것도 멋지게....... 그리고는 내게 자전거에 대해 설명해주고 뒤에서 잡아주며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함께 하면서 스스로 배우고 익히도록 기다리며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를 함께 찾고 작살을 꽂거나 그물을 멋지게 던져서 잡아보는 것이다.

넷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주고 때가 되면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계속 돕고자 하는 교육의 과잉이 아니라 교육의 절제가 필요한 순간이다. 혼자서도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때가 되면 스스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떠나보내야 한다.

강물이든지 바다이든지 더욱 큰물로 떠나보내야 진정한 존재감이 이루어진다. 나 역시 자전거를 혼자서도 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순간, 운동장을 떠나 마을 골목길과 큰길을 환호하며 얼마나 돌았는지 모른다. 그때의 만족감과 희열! 그리고 성취감이란 너무나 컸었다.

각종 안전사고로부터 희생당하는 생명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선생님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주 돌아보게 된다. 알맞은 가르침과 알맞은 절제, 제자의 성장을 인지할 줄 아는 판단력, 기쁨으로 떠나보낼 줄 아는 여유....... 이런 것이 선생님의 자세일 것이다. 지금도 향수에 젖어 본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 그 넓은 운동장을 돌 때마다 나에게 던져 준 형의 환한 미소가 정말 그립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익산열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