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국악예술원소리뫼 대표

가끔 길에서 허리가 90도로 굽은 채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거나 자루를 머리에 이고 가는 노인들을 보면 송강 정철의 시조가 떠오른다.
이고 진 저 늙은 이 짐 벗어 나를 주오 / 나는 젊었거늘 돌이라 무거울까 /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훈민가 중)
어느덧 2014년의 끝자락이 꼬리친다. 덩달아 내 인생도 반백년을 넘어 서고도 다섯 고개를 넘어서고 있다. 무엇이 그리 바쁜 일인지 모르겠다. 인생의 고개를 지나 썰물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저절로 지나 갈 곳을 주저 없이 가는 세월의 야속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온갖 생물체를 돋아나게 하고 꽃과 나무들을 생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준 봄이 엊그제인데 겨울이 되고 한해의 끄트머리에 닿기라도 하면 아쉽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를 갖는, 시작은 어떻게 하고 마무리가 어떻게 되든지 하루하루는 어김없이 보내지고 있다.
지금 나이에 타당치 않은 표현이라 생각하지만 분명 지금 우리가 늙어 있는 것보다 늙어지고 있는 길을 서슴없이 지나고 있다는 현실이 슬프다.
들어가는 나이는 모두에게 세월 앞에 굴복 할 것을 강요한다.
늙어가는 것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없다. 요맘때면 친구들이 모여 나이 들어가는 얘기를 나눈다. 열쇠를 어디 뒀는지 몰라 찾기 일쑤이고, 집을 나서면 가스를 끄고 나왔는지 불안하고 어제 저녁에 차를 어디에 주차하고 왔는지 한참을 생각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의 페인트가 벗겨지고 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듯, 오래된 가구에 흠집이 생기고 색이 변하기 시작하듯, 우리도 눈가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곱던 피부가 칙칙해지고 여기저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늙어 소외되고 있다는 공허감에 마음의 병도 조금씩 생긴다.
아무리 정신을 젊게 가진다고 한들 점점 퇴색해지는 육신을 무시 할 수 없다. 또한 아무리 육신을 건강하게 관리한다고 한들 몸소 느껴지는 차이는 무시 할 수 없지 않은가.
어느새 서리가 수북한 머리를 보아도, 앞이 훤하게 넓어지는 이마에서도, 기력 없이 처지는 피부, 갈수록 골이 깊어지는 주름진 얼굴에서도, 튼튼하던 치아는 세월의 바람에 삭아 진 듯 조심스러울 뿐이다.
이제는 조금만 아파도 약국보다 병원으로 직행하며 구체적으로 생각 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있다고 볼 때 자신의 생이 벼랑을 향해 한 걸음 씩 가고 있다.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이겨내야 하는 중압감, 그렇듯 지나는 연속성 상에서 자신의 영역이나 행동반경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는 것은 나의 반경이 그만큼 좁아지고 있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여태 살아왔고 앞으로도 얼마만큼의 목숨을 부지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지난 것이 너무나 회의적인 것도 앞으로 올 것에 대한 우려나 기대라는 것도 무덤 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이 상책일수도 있다.
누가 젊음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젊은 나이만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들, 젊다는 이유만으로 도도한 그들이 무척 부럽다. 그렇다면 젊음을 흉내 내려고 애쓰지 말고 여유 있게 세월의 흐름을 타고 함께 가야 한다.
이제 미소로 세월을 맞으며 아름답게 늙어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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