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고 고달팠지만 행복했습니다”
3선 불출마 약속 지키고 고향인 산으로 들어간 ‘나무 사나이’
4번의 교통사고 인생 전환점 삼아 큰 산 일군 영원한 조합장
귀농인 임업교육의 전도사 자처…숲 유치원‧휴양림 조성이 꿈

김근섭 전 익산산림조합장과 부인 김홍자 씨. 춘포면 천서리 표고버석 농장서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부인 김홍자 씨는  9년 3개월 조합장 재임시절 월급봉투 한 번 가져다 주지않은 김 전 조합장을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준 내조의 여왕.

그런 그가 이름만 걸어놓아도 당선이 확실한 조합장 출마를 포기하고 고향이나 다름없는 ‘산’으로 돌아갔다.

온갖 억측이 난무한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은 한번 내뱉은 말은 꼭 지키고야 마는 그의 굳은 심지가 담겨 있다.

2005년 조합장에 당선된 그는 “4년 간 열심히 한 다음 조합원이 원하면 재선은 해도 3선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무도 기억 못하는 10년 전 약속을 지킨 것이다. 그것도 40여 년간 청춘을 불살랐던 ‘산림조합’을 떠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말이다.

하지만 수 십 년간 그를 옆에서 지켜본 조합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꺼져가는 불씨나 마찬가지인 조합을 살린 그에게 출마를 종용했다.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 있는 그를 일으켜 세우며 ‘통사정 반 협박 반’ 매달렸다.

그는 단호했다. “언젠가 물러날 자리인데 ‘남아일언 중천금’ 약속도 지키고, 좋은 모습으로 후임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설득했다.

삶의 고비 때마다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았던 4번째 교통사고도 묘하게 이 시기에 일어났다.

그렇게 그는 지난 3월 23일 퇴임식을 갖고 아름답게 퇴장했다. 그가 평생 일군 조합은 김관기 신임조합장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퇴임식 다음날 아침 그의 발길을 이끈 곳은 춘포면 천서리 표고버섯 농장. 부인 김홍자 씨(60)가 조합장 당선 후 월급봉투 한번 갖다 주지 않아 궁여지책으로 꾸린 삶의 현장이다. 성실히 농사지은 덕분에 하우스가 17개로 늘어날 정도로 제법 규모가 커졌다.

다음 행선지는 익산 근교에 있는 3만 여 평에 달하는 나무 밭. 매일같이 이곳을 오가며 소나무‧이팝나무‧왕벚나무 등을 가꾼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걸음걸이가 조금 불편해 좀 쉴 법도 하지만 부지런한 천성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귀농귀촌인 교육을 위해 전국을 누비기도 한다.

반평생 말없이 뒤에서 버팀목 역할을 해온 ‘내조의 여왕’ 김홍자 씨는 “그동안 못다 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좀 쉬면서 건강을 챙긴다고 약속했지만 과연 지켜질지 모르겠다”고 미소 짓는다.

어찌 보면 조합장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이 그의 앞에 펼쳐질지 모른다. 그 자신과 부인, 그리고 주위사람들은 틀림없이 또 다른 보람 있는 삶을 찾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는 귀농귀촌인 교육에 힘을 보탤 계획이다. 표고버섯 농장에 기술을 배우러 오는 귀농귀촌인을 부인 혼자 상대하긴 벅차기 때문에 옆에서 거들 참이다.

임업 쪽에 뜻을 둔 귀농인들에겐 노하우를 전수할 생각이다. 나무에 문외한인 초보 임업인들이 고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은 게 그의 작은 소망이다.

그는 “솔직히 귀농인들이 4~5년 농사지으면 지쳐간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경우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도 종종 있다. 이들에게 나무 가꾸는 노하우를 전수해줘 안착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산림조합원인 이들이 잘살아야 우리 조합이 튼튼해 질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40년간 간직한 이루지 못한 ‘꿈’

1977년 산림조합에 첫발을 디딘 그는 평생 가슴 속에 간직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바로 고향 익산에 ‘숲 유치원’과 ‘휴양림’을 선물하는 것.

웅포 산림체험관에 숲 유치원을 만들어 어린이들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뛰어 놀게 하고 싶다.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나무의 소중함을 알고, 숲을 체험하며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공간이 그가 바라는 진정한 ‘명품 유치원’이다.

9년 3개월간의 조합장 재임시절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휴양림 조성. 산을 훼손하지 않고 돌을 쌓아 만든 널따란 숲 마당에 ‘움집’을 비롯해 기와집, 초가집 등을 지어 우리나라 주택건축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휴양림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복한 직장

그가 지금까지 심은 나무는 족히 100만 그루는 된다. 그의 발품과 손 때가 묻은 산의 면적만도 5천ha 달한다. 익산시 전체 면적 1만1천ha의 절반가량인 엄청난 크기다.

그의 유별난 나무사랑은 2천600여 조합원뿐만 아니라 웬만한 시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1977년 1월 1일에 산림청 공무원이 됐으니까 어느 새 40년이 흘렀다. 임업기술지도원 1기생으로 산림청에 첫 발을 디딘 후 왕궁 용화리, 여산 원수리 등 익산 지역의 산이란 산은 전부 돌며 나무를 가꾸고 지키는 일에 생을 바친 셈이다.

이 같은 모든 일은 사랑하는 부인 김홍자 씨와 외동 딸 김양연 씨(33‧한국농어촌공사)가 잘 이해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100만 그루의 자식을 둔 욕심 많은 아비다. 때문에 아내와 외동딸에겐 나무에 쏟은 만큼 사랑을 주지 못해 항상 미안할 따름이다.”

그는 퇴임사에서 “산림조합같이 좋은 직장은 없다. 40년간 힘들고 고달팠지만 정말 행복했다.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직업이라 보람도 컸다”고 회고했다.

거리를 지날 때 외동딸에게 “저 나무 아빠가 심었다”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그는 익산에 수많은 나무를 기증하기도 했다.

김동문 배드민턴체육관 화단과 이리역 폭발사고 후 가로수, 전군도로 벚꽃나무, 성모병원 담장, 인화동 4.4만세운동 기념탑 앞 공원 등이 그의 손을 거쳐 간 나무들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증한 나무는 이리여고 명패. 나무에 학교명 ‘이리여고’를 크게 새겨 아름답게 꾸몄다.

산에 오르는 것과 나무 가꾸기가 취미라는 ‘나무 아버지’ 김근섭. “나무는 산주의 발걸음 소리로 자란다. 많이 가볼 수록 예쁘게 성장한다”고 말한다.

‘나무가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은 사람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역설하는 그는 돌 본 만큼 자라는 거짓 없는 나무에게 모든 걸 내려놓고 돌아갔다. /조영곤 기자

조영곤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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