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극장 아르케 객원연출

몇 년 전 올렸던 낭독극 ‘눈먼 아이가 그린 풍경’이라는 작품 중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어 공연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침묵의 시간이었다. 4명의 배우가 각각의 역할을 맡아 무대에 앉아서 한 권의 책을 읽어주는 공연이다. 책 한 권을 다 읽기에는 시간상의 문제가 있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하고 그 내용을 영상과 함께 낭독해 주는 공연이었다. 배우들과 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침묵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그래서 공연 중에 실제 침묵을 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도해 본 것이다. 영상과 음악이 어우러져 공연이 진행되는 중간에 다음의 문장이 영상에 띄워지게 됐다.
‘지금부터 3분 동안 침묵하겠습니다.’
처음 몇 초 동안 관객들은 무대에 있는 배우들을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설마 정말로 말을 안 하겠어’하는 시선으로. 그러다 정말 아무 말도 안 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뭔가 이상했던지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을 쳐다보고 앞,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민망한 듯이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상황이 부담스러웠던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연출을 하면서 음향 오퍼를 보고 있던 나는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부담감으로 나조차도 어찌할 줄을 몰라 자꾸 시간만 체크하고 3분이라는 시간이 빨리 흐르기만을 재촉하고 있었다. 침묵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공연으로 들어가자 객석의 분위기가 안도감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침묵이라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꼈음을 서로 이야기했다. 연습 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관객들의 반응에 대해서 침묵이라는 무게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새로운 해를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에서 그 반절이 지나고 있다. 지난해 수많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지 못함에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은 왜 항상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고, 또 세우고, 세우는 것일까? 언어에 침묵이 있듯이 ‘생각의 침묵’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올해에는 ‘생각의 침묵’을 갖는 것이 계획이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는 내 머릿속의 침묵이 꼭 필요할 것 같아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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