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추억 ‘엘베강’ 옛 모습 그대로 이전

1982년 김칠선 할머니 때 쓰던 탁자·액자 등 옮겨 역사 이어가

가격은 그대로… 예전 자리보다 2배 이상 넓어져 손님 더 찾아

김칠선 할머니 뒤를 잇는 조카며느리 조명순 씨.

‘익산역 엘베강.’

익산 토박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호프집이다.

설령 다른 지역 사람일지라도 한 번쯤은 들어봄직하다.

엘베강은 1982년 9월 14일 김칠선 할머니(78)가 처음 문을 열었다. 익산역 앞에서 잃어버린 막내딸을 기다리면서 호구지책으로 차렸다.

34년 역사지만 사실 10년은 훨씬 더해야 한다. 운영하던 여인숙 입구에 차린 ‘간이 천막 맥주집’이 엘베강의 시초이기 때문.

김칠선 할머니는 9년 전 꿈에 그리던 잃어버린 막내딸(충북 보은 거주)을 찾으면서 엘베강을 조카며느리 조명순 씨(61)에게 물려줬다.

이렇게 한 자리에서 무려 34년을 흘러온 엘베강이 올 2월 22일 확장 이전했다.

주소는 익산시 중앙로5-16. 중앙동 삼한당약국 맞은편 골목에 새둥지를 틀었다.

조명순 씨는 “건물주인 아들이 엘베강 자리에 호프집을 한다며 자리를 비워달라고 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옮기게 됐다”고 이전한 이유를 설명했다.

해가 어둑어둑해진 17일 오후 6시. 새얼굴로 만난 엘베강은 산뜻한 차림새를 갖추고 있었다. 비좁고 투박한 모습은 없어지고 널찍하고 쾌적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그러면서도 34년의 역사와 애환을 간직한 서민들의 쉼터를 그대로 이어가려한 흔적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김칠선 할머니 때부터 쓰던 집기 등을 모두 옮겨와 배치했기 때문이다.

입구에 내걸린 간판은 비록 새것이었지만 예전 간판 모습을 재연했다.

첫 번째 투명 미닫이문을 열자 34년의 나이를 먹은 묵직하고 기다란 원목 탁자가 오랜 단골손님들을 맞았다.

벽에는 맥주잔을 들고 서 있는 김칠선 할머니의 캐리커쳐가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두 번째 여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탁 트인 주점이 한눈에 꽉 찼다. 예전 자리보다 2배 이상 넓었다. 화장실도 남녀 따로 현대식으로 설치돼 환경이 예전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엘베강은 장소가 바뀌었어도 향수는 그대로였다. 예전 자리에서 벽에 걸려 있던 사진과 액자들이 옛 모습대로 벽면을 가득 장식했다.

특히 신동에서 화실을 운영하는 김성민 씨가 대학생 때 그린 엘베강 풍경은 감회가 새로웠다.

장소가 넓어지면서 단골손님인 유명 작가들이 작품을 선뜻 기증해 볼거리도 더 많아졌다.

34년 된 벽에 붙어있던 기다란 원목탁자도 옛 모습대로 벽에 기댄 채 손님들을 맞았다.

할머니 손때가 묻은 생맥주 꼭지는 새로운 자리에서 지금도 찬란한 금빛을 뽐내며 연신 시원한 생맥주를 담아냈다.

생맥주 값은 500cc 한 잔에 2천500원, 명물인 땅콩과 오징어 입 등 맛깔 나는 안주 역시 대부분 4천 원으로 예전 그대로였다.

초저녁부터 북적이던 풍경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단골손님들이 이전한 것을 귀신같이 알고 찾고 있었다. 장소가 넓어져 젊은 손님들도 많아졌다.

까까머리 학생 때부터 단골이라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은 “일주일에 한번쯤 찾고 있다. 톡 쏘는 옛날 맥주 맛과 안주 맛을 잊을 수 없다”며 같이 온 친구들과 건강함에 대한 축배를 들었다.

이렇게 엘베강은 파릇파릇한 청년들이 어느새 흰머리에 배불뚝이가 돼 옛 추억을 마시고 있었다. 또한 지금의 젊은 세대들도 즐겨 찾으며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우창수 기자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