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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6.12.26 09:40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평산신씨 시조인 신숭겸은 전라도 곡성 출신으로 삼웅산(三熊山)이었으나, 왕건을 도와 고려를 개국한 공신들의 성과 이름, 관향을 하사했다.

태조 왕건은 삼웅산을 신숭겸으로 개명하고 관향을 평산으로 정했으며, 복사귀를 복지겸(卜智謙)으로 개명하고 면천(沔川)복씨의 시조로 하고, 백옥을 배현경(裵玄慶)을 경주(慶州) 배씨의 시조로 했다.

918년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함께 태봉의 왕인 궁예를 폐하고 태조 왕건을 추대하고 대장군에 올랐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 날 태조가 여러 장군들과 평주에 사냥을 나갔다가 삼탄을 지날 때 마침 하늘을 나는 세 마리의 기러기를 보고“누가 저 기러기를 쏘아 맞힐 수 있겠는가?”라고 물으니 여러 장군 중에서 숭겸이 말하기를 “몇 번째 기러기를 쏘리까?”하니 태조는 웃으면서 “셋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쏘아라”했다. 숭겸이 날아가는 셋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쏘아 떨어뜨리니 태조가 탄복하고 기러기가 날던 땅 3백결(結)을 하사 하고 평산을 본관으로 삼게 했다.

927년 대구 근방에서 견훤 군사와의 싸움에서 포위되어 왕건이 위기에 처한다. 왕건과 얼굴이 비슷한 신숭겸은 태조와 옷을 바꾸어 입고 왕건을 숲속으로 도피시키고 자신은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가 싸우다가 전사함으로서 태조 왕건은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왕건은 신숭겸의 전사를 슬퍼하며 호를 내리고 그 곳에 지묘사(智妙寺)를 세워 명복을 빌게 하였고, 숭겸의 아우 능길과 아들 보(甫)를 원윤(元尹)으로 삼았다.

또한 태조는 팔관회를 때에 신숭겸과 김락 등 전사한 공신들을 생각해 그들의 가상(假像)을 만들어 자리에 앉히고 술과 음식을 대접했다. 이 관례는 후대 왕들도 계속 전승됐다.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1120년 예종이 팔관회에서 이를 보고 충절을 기리는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노래를 지었다.

출생지인 전남 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리180(귀래길242)에 구룡사와 동상이 있고, 강원도 춘천시 서면 방동리816-1번지에는 묘소와 장절사, 기념관이 있으며, 동구 지묘동526(신숭겸길17)에 유적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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