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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여성순교자 ‘문준경(文俊卿)’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17.01.16 10:25
신동 정보작명연구원장

도서선교의 어머니, 믿음의 어머니로 불리는 문준경은 전남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에서 남평문씨 문재경(文在經)의 3남4녀 중 3녀로 태어났다. 진사를 지낸 할아버지는 총기가 뛰어나고 행동이 남자 같아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하며 준경이란 이름을 지었다.

어려서 부지런하고 모범적이어서 주위 칭찬과 기대를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성장했다.

17세에 증도면 등선리의 정회운의 삼남 정근택과 결혼을 했다.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남편은 소실을 얻어 딴 살림을 차렸다. ‘생과부’란 별명을 들으며 신세를 한탄하며 지내는데 시아버지의 지극한 배려와 친절로 국문을 깨우치고 20여년을 모셨다.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목포에 있는 큰 오라버니 집근처에 셋방을 얻어 이사를 갔다. 재봉틀을 구입해 삯바느질을 시작하며,외로움을 달랬다. 여신도의 안내로 목포성결교회에 나가 장석초 목사를 만났다.

1928년 세례와 집사직분을 받은 후 옛날 자기와 같이 방황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전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 후 김응조 목사, 이성봉 목사를 통해 전도훈련을 받았다.

1931년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교)에 들어가 고학으로 온갖 일을 다 하며 학비를 모았다.

1932년 첫 실습기간에 임자에 진리교회를 설립했다. 진리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1935년 증도면에 두 번째 교회를 개척했다. 1936년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증도면 대초리에 세 번째 교회를 세웠다.

1950년 가을 공산 빨갱이들은 터진목 백사장에서 ‘병아리를 많이 깐 씨암탉’이란 죄명으로 죽창에 찔리고, 잔인한 확인 사살로 59세의 나이로 하나님에 영원히 안겼다. 순교한 문준경 전도사는 검정고무신, 대리거지, 만인의 어머니, 도서의 어머니, 사랑의 전도사, 복음의 사도 등 많은 별호를 남겼다.

문준경 전도사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와 장로가 신안군에는 700여명을 배출했으며, 그녀가 시무했던 증도면에는 159명의 목회자와 81명의 장로가 배출됐다.

문준경의 유적은 전남 신안군 증도면 문준경길178(증동리1284번지)에 증동리교회와 순교비가 있고, 순교기념관은 증도면 문준경길234(증동리1817번지)에 있으며, 앞면 모래밭 순교지에는 묘소와 순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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