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곡사 회주

날씨가 제법 매섭다. 한해의 마지막에 자리한 12월과 한해를 시작하는 1월은 심동(深冬), 엄동(嚴冬), 융동(隆冬)이라 불릴 만큼 몹시 추운 한겨울이다. 이맘때가 되면 큰 명절이 우리를 맞이한다. 12월 22일 동지(冬至)와 12월 25일 크리스마스가 그것이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서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동서양은 물론이고 비 기독교인들까지 축하한다. 대한불교조계종도 매년 서울 조계사 앞에 트리를 만들어 함께 기뻐하고 축하 메시지도 발표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까닭은 무엇일까? 깊이 고민할 이유가 없다. 고통 받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성인(聖人) 반열에 오른 분이 어찌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의 안락만 우선했겠는가. 그렇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불빛처럼 세상을 구하려는 뜻이 크리스마스에 담겨 있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따뜻한 희망의 빛을 비춰주려고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음력 4월8일 부처님 오신 날도 마찬가지이다. 고해(苦海)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도 이 땅에 오셨다. 나보다는 남과 이웃을 위하는 삶을 부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었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 국가에서도 법정공휴일로 정해 기념하는 것이다.

12월22일은 동지(冬至)이다. 24절기 가운데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 날은 팥을 삶아 쌀을 넣고 팥죽을 쑤어 먹는다. 붉은 색을 띤 팥이 액운을 막아준다는 이유 때문이다. 6세기경 중국 양나라에서 만들어진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는 동지에 팥죽을 먹는 유래가 나온다. 공공씨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 전염병 귀신이 됐는데,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기에 그 귀신을 쫓으려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에서도 많이 먹었지만, 최근에는 주로 사찰을 중심으로 팥죽을 만들어 먹는다. 이날은 새해 달력도 나눠주는데, 이 풍속은 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것과 더불어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고 불렀다. 동짓날 절에서는 인근의 경로당과 복지시설 등에 있는 어르신과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팥죽을 대접한다. 동지 역시 소외된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날인 것이다.

온정을 필요로 하는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의지할 곳이 없는 소외된 이들에게 그래도 세상은 따뜻하다는 것을 전달한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비싸고 큰 선물이 아니어도 된다. 비록 작더라도 정성과 온기(溫氣)을 담은 마음을 담아 나눔을 실천한다면 한겨울 추위는 견딜만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펴주신 거룩한 뜻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것은 당여한 일이다. 특히 기독교인이나 불교인이라면 반드시 가져할 자세이다. 나아가 종교인만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동짓날 팥죽을 이웃과 나누었던 선조들의 나눔을 떠올린다면 비종교인들도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

곧 새해가 된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송구영신(送舊迎新)’과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근하신년(謹賀新年)’의 이야기가 많이 들릴 것이다.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격동의 2017년은 이제 역할을 마치고 세월의 저편으로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다. 한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과 새해를 맞이하는 첫 달에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해 세상을 조금은 더 밝게 만드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실천해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부처님의 자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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