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서 22년 간 감독 우승만 31회 일군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

선수 수급 어려움 딛고 해마다 전국소년체전 등 제패 ‘금자탑’

왕년에 태극마크 달고 세계 누빈 스타플레이어 출신 체육교사

이리중학교(교장 김영만)가 연말 큰 경사를 맞았다.

올 한 해 전북체육을 빛낸 영광의 얼굴에게 주어지는 ‘2017년 전라북도체육상 대상’에 선정된 것.

이리중은 올해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펜싱과 핸드볼 등 2개 종목을 석권하고, 각종 전국 대회를 휩쓸어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개인이 아닌 단체가 뽑힌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사립중학교가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2개 종목 동반 금메달을 획득한 공로를 높이 평가해 주어진 값진 상이다.

전북체육사에 새 역사를 쓴 이리중학교의 중심엔 22년간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는 채수근 펜싱 감독(55‧체육교사)이 있다.

채 감독은 22년간 지도자 생활을 하며 전국대회 31회 우승한 ‘미다스의 손’이다.

수차례 전국대회 5관왕이란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고 있는 명실 공히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이기도 하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과 선수 수급에 커다란 어려움을 딛고 이룩한 금자탑이라 더욱 값지고 영광스럽다.

채 감독은 “모든 영광은 열심히 따라준 선수들에게 돌리고 싶다. 20년간 곁에서 지켜준 서민원 코치가 고마울 따름이다. 그리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물심양면 도와준 박영희 이사장과 김영만 교장에게 감사한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등 촌놈 처음으로 칼을 잡다

채 감독은 황등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고향에서 마친 그는 이리중학교에 진학해 처음 칼을 잡았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마침 학교에 펜싱부가 있어 선생님을 찾아가 자원했다.

그렇게 펜싱을 시작한 그는 중학교시절 땐 별로 빛을 보지 못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그저 그런 선수였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이리상고(현 전북제일고) 3학년 때. 1980년 61회 전북체육대회에서 첫 금메달을 전북에 안기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전문 지도자도 없이 선배들이 틈틈이 가르쳐준 기술로 일궈낸 기적 같은 전국제패이었기에 당시 대회 장소인 이리상고 체육관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그는 “중고교 시절 170cm로 그리 키는 크지 않았지만, 순발력과 재치가 빼어나‘여우’라는 별명을 얻었다”며 “정식 코치가 없어 독학하다시피 운동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장미꽃을 피운 셈”이라고 회고했다.

#한국체대 진학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 달다

고교 시절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한 그는 대한민국 엘리트 체육의 최고봉인 한국체육대학에 들어갔다. 공부로 말하자면 서울대에 합격한 것.

서울로 올라온 그는 더욱 운동에 매진했다. 1983년 대학 3학년인 그는 마침내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돼 처음 나간 대회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펜싱선수권대회. 그 후 1989년 은퇴할 때까지 수많은 세계대회에 출전하며 국위를 선양했다.

1983년 홍콩 아시아 오세니아 펜싱선수권대회에선 동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하기도 했다.

#함열여고에서 첫 지도자의 길을 걷다

화려한 선수 생활을 접은 그는 29살 때인 1990년 함열여고 체육교사로 발령이 나면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후진 양성을 위해 펜싱부를 창단했다. 남자는 이리중‧이리상고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여자는 이리여고 단 한 팀 밖에 없어 펜싱이 활성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한 참 후진 양성에 매진하던 그는 모교인 이리중학교의 부름을 받고 함열여고를 떠나야만 했다.

펜싱 전공 지도자가 없어 해체 위기에 놓였다는 다급한 구원 요청이었다.

몇날 며칠을 고민 끝에 그는 모교 펜싱을 살려야겠다는 중대 결정을 내리고 이리중학교에 입성했다.

#취임 3년 만에 이리중 시대 활짝 열다

그는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던 이리중 펜싱부를 3년 만에 일으켜 세웠다. 1998년 전국대회 전관왕에 오르며 이리중 시대를 활짝 열었다.

회장배‧ 중고연맹‧ 종별선수권‧ 문체부장관배‧소년체전 등 5개 대회를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쌓은 것.

그는 “1996년 모교를 맡으면서 선수들을 다시 뽑았다. 테스트를 통해 운동신경이 좋고, 민첩성과 순발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선발해 기초부터 맹훈련 시킨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펜싱계를 깜짝 놀라게 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그후 무려 22년 간 전국대회 31회 우승을 일궈내며 명장 반열에 올랐다.

아깝게 우승을 놓친 준우승은 38회, 3위는 75회나 된다. 성적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이다.

#국가대표 코치‧협회 부회장 등 펜싱 발전 일익을 담당하다

그는 지도자로도 태극마크를 달았다. 1999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중국 난징에서 열린 아시아펜싱선수권대회를 다녀온데 이어 2001년 태국 아시아펜싱 대표 팀 코치로 활약했다.

행정가로 변신해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8년 동안 전라북도펜싱협회 전무이사를 맡았다. 그후 2009년까지 부회장을 역임했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중고펜싱연맹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올 4월 불가리아에서 열린 세계유소년청소년 선수권대회 단장으로 참가해 3위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는 “앞으로도 후배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후진 양성에 매진할 각오”라며 “학생들이 운동을 기피해 선수 수급에 어려움이 있지만, 우수 선수를 잘 키워 펜싱 명문 이리중 시대를 이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사진 좌측부터 서민원 코치, 조용준 김선우 박정호(이상 3학년) 정재민 임원진 모건희 한희준 주진현(이상 2학년). 서민원 코치는 이리중 펜싱의 산증인이다. 체수근 감독과 22년을 함께하며 수많은 전국대회를 제패했다. 박정호 선수는 전국 랭킹 1위. 올 전국대회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쓴 차세대 국가대표다. 조용준‧임원진 역시 장래가 촉망되는 미래의 세계챔프다.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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