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안 돼도 남북왕래의 길 열리길”

새터민 모임 ‘한마음사랑터’ 결성 봉사도 실천

“6월 12일 북미회담을 TV로 지켜보며 북한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로웠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주민들 먹여 살리겠다고 회담에 나왔는데 앞으로 잘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유권자로서 당당히 투표했다. 권리를 행사 안하는 사람들, 참 이상하다.”

“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탈북민’이라고 하는데 ‘새터민’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본다. 북에서 탈출한 건 맞지만, 새로 터를 잡아 살고 있다는 새터민이 더 뜻이 맞고 어감도 정감 있지 않나.”

13일 오전 투표를 마치고 <익산열린신문>을 찾은 김주영 씨(45)는 특유의 북한 말씨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했다. 김주영 씨는 지난 2일 남북정상회담 표지석 글씨를 쓴 여태명 교수의 후원행사 때 만난 새터민이다.

지난 10일 TV조선 ‘모란봉클럽’에 출연했고, 이전 EBS, MBN에도 나왔던 인물이다.

그의 고향은 평안남도 북창군 ‘송남청년탄광’이다. 1953년 휴전 후 김일성이 개발한 탄광마을. 선친은 제대 후 이곳에 배치 받아 살았다.

그는 북한에서 이름난 ‘경제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물자관리회사 보위대원, 건설자재를 생산하는 회사 통계원(경리)으로 일했다. 사람이름은 까먹어도 날짜만큼은 정확하게 기억하는 숫자의 달인이다.

스물한 살 고향에서 결혼, 아들·딸 낳고 살던 그는 부문여맹위원장, 지구장 등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했지만, 서른한 살 남편을 일찍 여의고 난 후부터 삶에 위기가 왔다.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장사를 하다가 고위직에서 밀려나고, 돈도 여러 번 떼였다.

2008년 자식들을 친정엄마에게 의탁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장사를 하던 그는 탈북을 결심, 2010년 12월 13일 새벽 3시, 자식들과 함께 압록강이 얼기만을 기다렸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에 성공했다.

라오스를 거쳐 태국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통해 2011년 1월 28일 드디어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처음엔 김포에서 살았다. 자동차 철판가공회사에서 일하다가 왼쪽 손가락 4개를 모두 잃는 아픔도 겪었다.

2013년 1월 익산으로 온 그는 직장을 못 구해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대한민국에 이러려고 왔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자식들 때문에 힘을 낸 그는 새터민 상담사의 권유를 받고 2015년 김제 백구에서 포도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여기서 재혼하고 안정적 기반을 다진 그는 올해 제2의 인생을 설계했다.

지난 4월 13일 새터민 모임인 ‘한마음사랑터’를 결성한 것.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새터민들은 그동안 사랑만 받았지, 보답은 못하고 살아왔다. 이제 우리도 보답하며 살고, 새터민끼리 의지하고 살자고 모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익산에 새터민 수는 92명. 현재 17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와 회원들은 남북정상회담이 있던 지난 4월 27일, 진달래요양원을 찾아 뜻깊은 봉사를 실천했다. 과일과 음료수 들고 위문 방문했고, 5월 8일엔 어르신들 말동무도 해드렸다. 팔순을 맞은 새터민 2명을 찾아가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도 북미회담, 남북회담이 잘 성사돼 북한주민들이 굶지 않고 잘살길 바란다. 당장 통일은 안 되더라도 새터민과 실향민들이 북에 있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도록 서로 왕래의 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