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규 원광고등학교장

어린 시절, 우리 형제들이 깨어나지 않은 새벽에 어머니는 먼저 일어나시어 가족을 위해 정성껏 밥을 지으셨다. 쌀을 씻어 가마솥에 넣고 적당히 물을 부은 뒤 장작불을 지피면 얼마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맛있는 밥이 되었다. 이렇게 맛있는 밥을 쌀 한 톨만으로도 지을 수 있을까? 물론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쌀 한 톨로 밥을 지을 수 없듯 우리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집단의 일원이 된다. 조금 더 자라면 부모의 품을 벗어나 유치원,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 소속된다. 그곳에서 규범과 문화 그리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과 기능을 배우고 익히게 된다. 그 후 사회에 나가면 더욱 다양한 집단에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이렇듯 인간은 집단 속에서 태어나 그 곳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현실적으로 혼자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사는 사회는 커다란 용광로와 같다. 그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들러붙은 녹을 벗겨내며 스스로 순도 높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개인이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하여 어느 사회든 구성 요건이 갖춰지면 공공의 재원을 투입하여 공교육을 실시한다. 이 제도는 자녀와 부모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시키는 것과 아울러 그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구성원을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식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가장 소중한 존재이지만 사회에서 보면 아이는 장차 그곳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때로는 위험하고 어려운 일에도 기꺼이 앞장서며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줄 아는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흔히 요즘 현대인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몰인정 하다고 말한다. 갈수록 산업화되고 분업화 되다보니 타인의 일에 관심을 가질 시간이나 여유가 사라져 가면서 생기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는 이웃을 위해 기꺼이 소매를 걷어 올리고 굵은 땀방울을 마다하지 않는 분들이 있다, 또한 학교 현장에서 어려운 환경 탓에 힘겨워 하는 제자들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이들을 보살피는 많은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렇기에 사회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살아갈 맛이 나는 곳이 된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냄비, 전기밥솥, 가마솥 등 짓는 도구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진다. 우리도 어떤 집단에서 생활하는가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가 달라진다. 나보다 남을 먼저 이해하며 헤아리는 사람들 속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훈훈한 사람 냄새와 인간미 넘치는 품성을 지니게 된다. 반면에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고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집단 속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서로를 불신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결국 자기 자신 또한 피해를 입게 된다. 

막강한 권력을 지녔던 정치인,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부를 세습하는 대기업 일가 등의 그릇된 행태가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요사이 이들이 지난 시절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정의를 짓밟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 잘못들이 하나 둘씩 밝혀지고 있다. 이제는 더 맑고 깨끗한 공동체를 일구기 위해 눈앞의 이익보다 상대를 배려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서로 존중하고 공존하는 터전을 만들기 위해 희생과 봉사라는 적당한 온도와 압력을 더해서 가마솥에서 희망의 김이 뿜어지는 그런 사회를 가꾸어야 한다.

나도 한 톨의 쌀이 아닌 주변의 수많은 쌀들과 어우러져 윤기 흐르며 구수한 맛을 내는 가마솥의 밥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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