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중학교장

지난 주, 교장실에서 책 한 권을 받았다. 교사 독서동아리에서 선정한 책을 내게 전달한 것이다. 선생님들이 만든 동아리가 잘 유지되면서 학교에서 책읽기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4월에는 좋은 작품이 실린 시집을 구입하여 전체 선생님들에게 드렸다. 올해 부임한 뒤 서너 차례 학교에서 일어난 유쾌한 일을 글로 엮어 교내 메신저를 통해 선생님들과 공유했다. 몇몇 선생님들이 응원해주셔서 많은 힘이 됐다. 국어 선생님 한 명은 내 글을 수업시간에 활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부터인지 매일 몇 장이라도 책을 읽고 서너 줄이라도 써보는 습관을 만들었다. 읽을 때 마음에 닿는 문장을 마주하게 되면 밑줄을 긋고 글쓰기 노트에 꼼꼼히 적어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여유가 생긴 뒤 남을 도우려 하면 그런 날은 없을 것이고, 여가가 생긴 뒤에 책을 읽으려 하면 결코 그 기회는 없을 것이다.”라며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장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학교 경영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네 가지를 정했다. 그중 한 가지가 독서와 글쓰기를 생활화하는 귀공자 육성이다. 청소년기에 책 읽고 글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일과가 시작되는 아침 8시 30분보다 훨씬 일찍 등교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거나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며칠을 지켜보다 마침내 도서실을 담당하는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선생님에게 도서실 문을 열게 하였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는 일찌감치 훈훈하게 난방을 해두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교실에 찾아다니며 도서실 개방 사실을 알렸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학생들이 하나둘씩 도서실로 모이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손에서 휴대폰을 멀리하고 책을 잡은 학생들이 참 대견하고 기특했다.

요즘은 손 편지보다 문자 메시지나 SNS를 통한 소통이 주류를 이룬다. 이때 주로 단문이나 각종 이모티콘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문장을 구성하는 것도 어려워한다. 그나마 대부분 맞춤법은 무시된다. 5월은 유난히 감사하는 기념일이 많이 있다. 국어 교사들과 담임 선생님들이 주축이 되어 학생들에게 부모님과 스승님께 감사 편지를 쓰게 하였다. 선생님들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격식을 갖추어 손 편지를 써본 학생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였다. 책 읽는 기회가 줄고 글 쓰는 습관을 멀리 하면서 생긴 문제점이다.

기술 발달로 인하여 현대인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문자메시지, 카톡, 유튜브 등으로 소통하는 편리함에 길들여지고 있다. 아니, 우리 스스로 전자 매체의 홍수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점점 종이책을 가까이할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유튜브 다음은 뭐지? 다시 종이책이 아닐까? 사람들이 아날로그에 굶주리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에 배고파 있다고 생각해요. 모니터 속에 존재하는 이미지의 총합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수 있고 크기와 무게가 있고 감촉이 있는 매체를 그리워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책을 많이 읽고 나면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책을 바빠서 못 읽는 시기엔 사람이 희미해진달까.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느껴요. 책에 대한 허기가 져서 며칠 동안 정신없이 책을 몰아서 읽으면, 어느 순간 충전됐다, 강해졌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책을 읽지 않을 땐 자신이 부스러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읽고 나면 부스러졌던 부분이 다시 모아지는 느낌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소중한 재산이다. 오늘도 도서실에서 코로는 책 냄새를 맡으며 눈으로는 골똘히 책을 바라보는 귀공자들의 모습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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