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가위손 인생' 이발사 백순기 옹

30여 년 전만 해도 모든 남성은 이발관에서 머리를 다듬었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 시골동네에도 이발관은 꼭 있었다.

보통 신사들이 주로 하는 ‘상고머리’와 ‘스포츠머리’로 깎아달라는 주문이 많았다. ‘바리캉’은 빡빡머리 학생들 깎는데 사용됐다.

숙련된 이발사들은 ‘사각사각’ 소리 내며 가위질로만 머리카락을 잘랐다.

자그마치 ‘62년간 가위손 인생’을 걸어온 이발사 백순기 옹(77)은 지금도 편한 전동 바리캉을 잘 쓰지 않는다. 오로지 가위로 시작해 가위로 마감한다.

그의 이발관은 주현동 허름한 주택가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옛날 ‘동성극장’ 골목 중간에 있는 ‘성결이발관’이 그의 오랜 삶터다.

지금의 자리에 이발관을 차린 해가 1970년. 올해로 49년째다.

1983년 2층 건물을 올리고 1층에 꾸민 6평짜리 이발관은 36년간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의자’며 ‘세면대’ 등 모든 것이 1983년 당시 그대로다.

“이제는 가위를 놓고 편안히 쉴 나이긴 하죠. 근데 노는 것도 힘들고, 그래서 문은 날마다 열어요. 돈 벌려는 것보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죠. 자식들도 결혼하고 자기살림을 하니 돈 들어갈 곳도 없어요.”

그의 고향은 완주군 동상면소재지인 대아리. 부유한 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국전쟁을 겪었다. 전쟁 통에 형 둘이 실종됐고, 재산도 모두 잃은 채 고산면으로 피난 와 가난하게 살았다.

고산초 졸업장만 딴 그는 이종 매형이 운영하는 고산 삼기리 이발관에서 일했다. 그해 나이 겨우 열다섯 살이었다. 중고등학교 진학도 못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하지만 돈은 받지 못했다. 당시는 밥만 줘도 남의 집에서 일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바닥 쓸고, 머리 감겨주며 곁눈질로 기술을 익혔다. 바리캉 잡고 학생들 머리 깎는 것을 시작으로 숯불로 머리를 말아 고정시키는 ‘고데’도 잘하는 기술자가 됐다.

1969년 이춘자 씨(7년 전 작고)와 결혼, 익산으로 온 그는 지금의 자리에 살림집을 차렸다. 당시 가게 딸린 13평 슬레이트집에서 부인은 구멍가게를 했고, 그는 남의 이발관에서 일당 300원을 받고 일했다.

이듬해인 1970년 그만의 사업장을 차렸다. 당시 인근 성결교회를 다녀 ‘성결이발관’이라 이름 지었다. 현재 성결교회는 용제동으로 이사했고, 이름이 ‘사랑의 동산교회’로 바뀌었다. 그는 이 교회 집사다.

그는 49년 간 이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했다. 노름 한 번 하지 않았고, 술과 담배는 입에도 안 댔다. 알토란 같이 모은 돈으로 1남 3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웠다.

자신이 못 배운 한 때문에 자식 모두 대학까지 가르쳤다. 큰 딸은 법무사사무실에 다니고, 둘째 딸은 익산 법원 직원이다. 셋째 딸은 숙명여대를 나와 자영업을 하고 있다. 막내아들은 군산에서 식당을 하고 있다. 큰 사위는 익산시 공무원이다.

그는 무일푼에서 자수성가했다. 처음 세 들어 살며 이발관 했던 13평짜리 슬레이트 건물과 인근 땅까지 58평을 사 2층 슬라브 건물을 올렸다. 1층은 이발관, 2층은 그 혼자 살고 있다.

파리 날리는 날이 많지만, 손님들이 간혹 찾아 무료하지는 않다. 단골도 있지만 새 손님도 있다. 농촌에서 오거나 “머리 잘 깎는다”는 소개 받고 온 손님도 상당수다.

건강이 허락되는 날까지 가위손으로 살고 싶은 게 노년의 소망이다.

우창수 기자 ikopen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