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골목은 따뜻했네

                                     유 은 희

파랑 철 대문 집이었던가요

그 쪽문으로 달도 허리 굽혀 들곤 했죠

마당가 펌프샘을 지나

부엌으로 드는 낮은 문턱이

주인집 마당과 쪽방의 경계였지요

연탄아궁이의 노란 주전자는

저 혼자 멋쩍어서 달그락거렸죠

쪽방 아랫목은 가슴 한쪽을 데고도

겁 없이 부풀어 올랐어요

감나무는 자꾸만 창가로 가지를 뻗었지요

스무 해 겨울 삼양라면은 설익었고

들썩이며 성급하게 끓던 밥물도

지나친 불꽃 탓이었다는 걸 그땐 몰랐어요

너무 멀리 와버린 길에서 문득 뒤돌아보면

내 마음의 막다른 골목 끝으로

파랑 쪽문 하나 여전히 열리네요

그대가 마중물로 불러내 줬던 별들 아득하네요

<작가노트>

추억은 힘이 세다. 오늘의 페달을 한없이 밟아가면서 문득 힘에 부친 언덕 어디쯤에서 추억 하나를 꺼내 보며 마음을 환기하기도 한다. 때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가까운 것보다 먼 것으로부터 새로운 것보다 빛바랜 것으로부터 위안을 받기도 한다.

마중물로 인해 새 물이 차오르는 펌프샘처럼 추억은 때로 오늘을 사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쪽방에서도 겁 없이 부풀었던 그 맑고 순수했던 시간들이, 설익고 넘쳤던 시간들이 문득 그리울 때 뒤돌아보면 저 먼 골목에서 파랑 쪽문 하나 열릴 것 같다.

별이 총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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