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내 품에 있었네.

심지 창의·융합교육원 대표

업실을 장만한 지 한 학기가 되었다. 명퇴하고 벌판에 나선 게 어느덧 6개월이 지난 것이다. 말이 작업실이지 해방구이자 도피처인 셈이다. 퇴직하면 아주 여유롭고 행복할 줄 알았다. 잘못 생각한 거다. 평소 학교 출근하던 시간에 집을 나선다. 30년 이상 길들여온 습관대로 몸이 움직이는 것이다. 일단 점심 끼니 걱정부터 해결해야 한다. 하루에 두어 명 손님이 찾아온다. 약속은 최대한 점심시간으로 맞춘다. 종일 전화벨이 서너 번 울리고 해가 저무는 때도 있다. 그런 날은 말 상대가 없어 산 입에 거미줄 칠까 봐 혼자 중얼거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책 읽고 글 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도시락을 가져오거나 라면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식사를 해결하고 산책 삼아 작업실 근처 원도심을 배회한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밤새 네온사인이 꺼지지 않았던 곳이다. 지금은 가게가 한 집 걸러 두세 집은 비어있다. 사람들 왕래도 뜸하다. 시간이 멈춰버린 느낌이다. 퇴직하고 어슬렁거리는 내 모습이 여기에 딱 박혀있다.

혼자 점심을 먹을 때면 이따금 군대 생각이 난다. 우리 소대에 나보다 세 시간 늦게 입대한 후임이 있었다. 같은 날 오후 2시에 입소해서 나보다 한 기수 아래가 된 것이다. 제대를 서너 달 남길 때까지 못된 선임 노릇을 톡톡히 했다. 점심 한 끼의 위력을 앞세운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괴팍한 나를 선임으로 대접해준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 내 꼴도 참고 이겨냈으니 그는 어딜 가더라도 잘 살 것이다. 제대하고 십여 년이 지난 뒤에도 이따금 꿈속에서는 휴가를 마치고 귀대하곤 했다. 눈을 뜨는 순간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다시 머리 깎으라면 못 할 짓이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추억이고 젊어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순전히 지금 생각이다.

작업실에 도착하면 다소곳이 깃을 포갠 신문이 날 반긴다. 밤새워 달려왔을 그 몸뚱이에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듯하다.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신문을 넘긴다. 펄럭이는 소리가 참 좋다. 신문을 읽다가 작업실 한쪽에 있는 철봉에도 매달린다. 나이 들어갈수록 적절한 체력관리는 드나들 수 있는 문을 넓게 해준다. 그러다 보면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난다.

엊그제는 익산문화도시지원센터에서 온 연락을 받고 회의에 참석했다. 익산은 ‘시민이 행복한 품격 도시’를 꿈꾸고 있다. 그런 익산이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도시에 선정되면서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 가운데 한 꼭지에 발을 들였다. 청소년 문화에 알량하지만 조그마한 목소리라도 보태고 싶은 생각에서였다. 내 생각과 참여가 작업실을 넘어 누군가에게 온기를 전한다면 그것이 행복이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다짐했다. 앞으로는 시간에 쫓기는 일을 만들지 말자고. 바빠 죽겠다는 입버릇 대신 좀 더 느긋해지자고 말이다. 그러다 보면 좋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러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 내 품에 가꾸면서 만날 설렘을 느끼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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