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할 봄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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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작가 |
환장하게 좋은 봄날이다.
베란다 문을 여니 벚꽃이 속살거리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 하다.
때마침 카톡 소리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단체 카톡방에 벚꽃이 만발한 사진이 올라와 있다.
그 중에서도 암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댓글을 달았다.
‘여기가 어디다요?’
중국의 풍경에나 있을법한 기암괴석과 암자의 모습이 궁금했다.
곧 댓글이 씌여졌다.
‘구례 사성암이요’
암자가 궁금했는데 구례라는 말에 먼 기억이 앞줄로 툭 튀어나왔다.
구례화엄사와 수학여행비 700원이 떠오른다.
야윈아버지, 행상 나간 엄마, 그리고 점방,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언니들
아마 늘 편챦으셨던 아버지가 하필 그 무렵 병세가 더 안 좋아졌었나보다.
그런 아버지께 여행비는 부담이었을 것이다. 아픈 아버지에게 하루 종일 가게를 보게 일도 안 된다는 것을 일찍 철이 들어버린 6학년 아이는 여행 안가도 된다는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물론 언니들도 서로 결석 하지 않겠다며 다툴게 뻔했으리라. 동생은 저학년이고 귀한 아들이라 더욱 안 되었을 것이다. 엄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앓이만 했을 것이고 집안 조용하려면 내가 제일 만만 했을 것이다.
집 앞 벚꽃은 아직도 필 듯 말 듯 여러 날을 밀당인데 사진속의 벚꽃은 구름이 내려 앉은 듯 하다. .
곧이어 또 카톡소리가 났다.
‘오늘 내일이면 이곳도 진다네요’
단체 카톡방에 댓글이 풍년이다..‘좋아요’ ‘멋져요’ ‘가고 싶어요
봄날, 벚꽃 그리고 구례가 나를 이끌었다.
인터넷에 길찾기를 하니 125km이고 소요시간은 두 시간쯤으로 나왔다.
해가 길어졌으니 다녀 올만도 했다.
홀린 듯 네비게이션에 구례 화엄사를 찍고 출발 했다.
그 동안에도 거의 해마다 산수유마을 매화마을 화개장터를 갔었지만 친구들과 함께였거나 다른사람 차를 이용하니 화엄사는 비켜갔나 보다. 어쩌면 화엄사는 유명하여 안 가본 사람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 쪽에 여행을 갈 때마다 화엄사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숙제처럼 있었다. 얼마든지 혼자 갈수도 있었을 텐데 왜 엄두를 못 냈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여행은 숙제여행이 될 것 같다. 소중한 것을 혼자만 살짝살짝 보고 느끼듯 벚꽃만큼이나 따뜻하고 포근한 여행길이었다. 그때는 아마 여행을 못가서 떼를 썼기 보다는 해픈 웃음으로 오히려 가족을 안심 시켰을지도 모른다.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선생님이 기행문을 쓰라고 했을 때 당혹스러워 했을 소녀가 안쓰러웠다. 제일 예쁜 벚꽃아래 차를 멈추고 소녀를 안아주었다. 그런데 6학년 소녀가 말을 건넨다
‘맨입으로?’ ‘아니요 대접해드려야지요’
중년여인은 전망 좋은 카페에 들러 달달한 케잌 한조각과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구름이 내려앉은 듯한 섬진강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 중년이된 소녀가 웃고있다
중년여인과 소녀의 숙제여행을 더 누리고 싶어져서 화엄사를 잠시 미루고 사성암에 먼저 갔다. 과연 절벽위의 암자도 대단했지만 암자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홀려지는 듯 했다.
해질 무렵 화엄사에 도착했다. 여행을 환영해 주는 듯 입구부터 오색의 연등이 반겨준다.
염불소리와 조용히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 어둠이 내리고 절집 연등에 불이 켜지자 소녀는 더욱 좋아하는 듯 했다.
동행이 있는 여행은 즐겁다. 신선한 공기처럼 맑은 웃음으로 까르륵 대고 재잘 거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오늘 여행은 우리 엄마 말처럼 뽀땄했다. (포근하고 따뜻?)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숙제여행.
소녀가 웃는다.
하늘에는 웃는초승달이 내려다 보고 있다.
안녕 소녀!
화엄사의 벚꽃도 웃으며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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