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희 시인의 치유의 시 읽기>

빈 집             

김민수 (소리뫼 단장)

종기처럼 그을린 마을에

빈집 하나씩 늘어갑니다

허리 굽은 빗물은 울먹울먹 흘러가고

꼭두새벽 소죽 끓이던 부엌도

밖으로 나와 하늘만 쳐다봅니다

관절염을 앓은 기둥은

마파람 설렁설렁 드나들어 휘고

지붕은 어느새 집의 어깨까지 내려앉았습니다

형광등은 가난한 눈을 깜빡거리고

구석마다 쨍쨍하던 햇살도

마루 밑 그늘로 주저앉아 있습니다

평생 집의 품이 되었던 담장은

마디마디 허물어지고

문패 하나 달지 못한 대문은 붉게 충혈되어

세월의 녹만 노을처럼 번집니다

나날이 빈집만 늘어가는 어느 마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시입니다. 시골에서의 유년이 없었다면, 그 가난을 겪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살아있는 묘사를 할 수 있을까요. ‘종기처럼 그을린’ 지붕들 사이로 울먹거리며 흘러가는 낮은 물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 곧던 기둥도 세월의 마파람이 들어 휘고 지붕은 갈수록 낮아집니다. 그렇습니다. 그 많던 식구들이 북적거리며 살았던 집이 이렇게 작고 좁고 낮았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콩알처럼 세상의 변두리로 뿔뿔이 흩어져 고단하게 살다가 문득 찾는 고향은 시간의 뒤편에서 홀로 늙고 병들고 사라지고 무너져버린 흔적들만이 남아 쓸쓸하기만 합니다. 마루 밑 그늘처럼 앉아 지난 시간을 가슴으로 훑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합니다. 문패도 달지 못한 철대문은 그런 화자를 바라보며 가난을 대물림한 것만 같아서 눈시울이 붉어졌을 겁니다.  /유은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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