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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산 에세이 - 꽃이 떨어져 꽃으로 피다박익산의 사람 사는 이야기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3.08.21 08:46
전 키즈맘어린이집 원장

7월 중순이 되면 익산 곳곳이 온통 환하다. 가로수로 심어진 배롱나무가 일제히 붉은 꽃을 피워내기 때문이다. 그 꽃이 핀다는 것은 친정엄마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뜻한다.

가까운 친구들과 차를 타고 가다가도 배롱나무에 꽃이 핀 걸 보면 “익산아 엄마 생각나겠네” “엄마 추도식 돌아오지?”하고 묻곤 한다. 다른 사람 기일은 잘 몰라도 친정엄마 기일은 친한 친구들은 거의 알고 있다. 엄마가 가신 날도 흐드러지게 배롱나무꽃이 피어 있었으니까

뇌출혈과 뇌경색을 연이어 겪은 엄마가 원광대학병원의 긴 치료를 마치고 원광 노인 요양병원에서 재활을 했다. 처음에는 간병인의 부축을 받아 이동식 변기에 대소변만 가릴 수 있는 상태였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그림카드를 가지고 날마다 둘이서 단어 연습을 했다. 발음이 잘되는 쉬운 단어부터 연습하고 있는 엄마는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세 살배기 아이 같았다.

저녁 무렵 딸들이 할머니 문병을 와서 휠체어를 밀고 병원 뜰을 산책했다. 할머니를 그네에 앉히고 밀어주며, 바람에 날리는 흰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큰애를 보다가 옆에 아름드리나무가 눈에 띄었다. ‘무슨 꽃이 저렇게 예뻐?’ 나는 한숨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백일홍이야” 순간 우리는 깜짝 놀라서 한 곳을 바라보았다. 엄마였다. 엄마가 그 어려운 단어인 백일홍을 발음한 것이다. “엄마 뭐라고 했어? 이 꽃 이름이 뭐라고?” 나는 놀라서 되물었고 엄마는 또박또박 다시 대답했다. “백일홍이야”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울다가 웃다가 쓰다듬기를 반복하다가, 모기가 할머니 물면 안 된다고 큰애는 부채질에 힘을 더했다.

배롱나무를 목 백일홍이나 배롱나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백일홍이라고 부르는 어르신도 계신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백일홍이라는 이름은 내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 어두운 동굴 속을 빠져나오다 바라보는 가느다란 햇살 같은 단어였다.

그날 이후 엄마의 단어 실력은 나날이 늘어 반년쯤 후에는 노래도 부르고 휴대폰으로 전화도 하고 배롱나무가 있는 운동장도 병실 친구들과 세바퀴씩 돌기도 했다. 그런데 약이 문제였다

뇌출혈과 뇌경색을 겪어서 뇌출혈을 막는 약과 뇌경색이 오지 않게 하는 상반된 약을 동시에 복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약을 끊으면 금방 어떤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요양병원에서는 제일 멀쩡한 분인데 제일 위험할 수도 있는 분이라고 했다. 퇴근하고 들르면 현관까지 나와 배웅하며 항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 손을 흔들어주셨다. 이 빠진 잇몸을 보이시면서….

그날은 오후에 출근해도 되는 날이라 여동생, 큰딸과 함께 병원에 들렀다. 한참을 이야기하고 놀다가 출근하러 가는 데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현관에서, 다른 날 보다 더 활짝 웃으시며 두 손을 흔들고 계셨다. 우리도 계속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은비야 네가 왔다고 할머니가 오늘은 두 손을 흔들고 계시네. 손녀가 딸보다 예쁜가 봐”

그렇게 엄마는 가셨다. 배롱나무꽃처럼 화사하게 웃으시던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회생할 수 없는 뇌출혈이 다시 일어나서 1년 6개월의 투병 생활을 마치고 그렇게 가셨다.

퇴직하고 난 후 한 달에 한 번씩 유기견을 임시 보호하는 큰 딸애 집에 간다.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까 하는 마음으로 강아지 산책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집 옆 공원에는 온통 배롱나무가 심겨 있는 데 어느 날 풀숲에 붉은색 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배롱나무꽃이 떨어져 풀 사이 꽃이 핀 것이다. 떨어져 피운 꽃이 꽃밭을 이루고 있었다.

뇌출혈 치료 중에, 사람도 잘 못 알아보는 상황에서도 엄마 입에서 나온 ‘강하게 살아야 해’를 유언처럼 오늘도 씩씩하게 하루를 살아낸다. 떨어진 꽃이 누군가에게는 다른 꽃으로 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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