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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찬영 칼럼 - 나의 뿌리를 알고 드러낸다는 것윤찬영의 열린칼럼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3.09.11 08:46

나의 뿌리를 알고 드러낸다는 것,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기찻길옆골목책방 주인장

정지아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이 책은 젊은 시절 빨치산 활동을 했던 작가의 부모 얘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을 쓰기 32년 전인 1990년, 스물다섯의 나이에 <빨치산의 딸>이란 첫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놨다. 좌우 냉전의 그림자가 채 걷히지 않았던 그 시절, 책을 낸 출판사 대표는 잡혀가고 책은 이적표현물로 낙인찍혔다. 그 와중에도 <빨치산의 딸>이 10만 부 넘게 팔려나갔다고 하니 글재주만큼은 대단했던 셈이다.

32년 만에 작가는 다시 부모 얘기를 책으로 썼다. 출판사 대표와 아버지가 등 떠밀어 썼던 첫 책이 ‘실록’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품은 말 그대로 ‘소설’이다. 책 제목을 온 국민이 다 아는 드라마 제목에서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의 딸>만큼 날이 서 있지 않다.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빨치산’이라는 특수성보다 ‘아버지’라는 보편성이 더 중요한 소설”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32년 전과 달리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은 이번 책은 (적어도 아직은) 이념의 그늘 없이 폭넓은 공감을 얻으며 벌써 30만 부 넘게 팔렸다.

30여 년 전에 쓴 빨치산 이야기가 긴 세월을 지나오며 그 존재 가치를 보기 좋게 증명해 보인 셈인데, 그 과정이 마치 정반합의 변증법을 떠올리게 했다. 아마 평생 변증법적 유물사관을 신념으로 지켰던 소설 속 아버지가 이런 딸의 모습을 지켜봤다면 ‘거 봐라, 이 애비 말이 맞았지’라고 할 것도 같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지역색이 무척이나 강한 작품이다. (지리산을 무대로 활동했던) 빨치산이라는 소재도 그렇거니와 구례라는 배경도 그렇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찰진 남도 사투리를 쓰는데, 이런 식이다.

“이런 반동 신문을 멀라고 아깐 돈 주고 보는 것이여! 한겨레로 바꽈 이번 기회에. 펭상 교련선상 함시로 민족 통일의 방해꾼 노릇을 했으믄 인자라도 철이 나야 헐 것 아니냐!”

“니나 바꽈라. 뽈갱이가 뽈갱이 신문 본다고 소문나먼 경을 칠 텡게.”

작가는 마치 전라도 사람들만 알아들으면 그만이라는 듯 때론 지나치다 싶을 만큼 아주 ‘순수한’ 구례 사투리를 담아내려 공을 들였다. 남도 사투리가 익숙치 않은 다른 지역 독자나 젊은 독자들에겐 불편할 수 있을 텐데도 작가는 조금도 개의치 않은 걸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아주 뚜렷하고도 분명하게 밝힌 이런 시도는 오히려 지역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호기심을 자아내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매력적인 유인이었을 터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명으로 또 한 번 무너져내렸다는 소식이 엊그제 들려왔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 지방 청년들이 살던 곳을 떠나 서울로 몰리는 현상과 깊이 관련돼있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수도권 집중”이라고 단언한다. 지난해 서울의 합계출산율은 0.59명으로 전국 꼴지였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어쩌면 우리가 찾는 답은 저 멀리 서울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 아주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멋진 그 무엇 말이다.

그러니 서울만 쳐다보고 있을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부터 깊이 들여다볼 일이다. 너무 익숙해서 몰랐던 그 무언가가 다른 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지도 모르니까. 빨치산 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다룬, 전라남도 구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이런 엄청난 인기를 얻으리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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