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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희 시인이 추천하는 치유의 詩 읽기유은희 시인의 문학산책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3.09.25 08:45

  쌀바구미         

                                    박익산

박 익 산

여름을 난 쌀벌레들이 꿈틀꿈틀 기어 나온다

검지로 눌러도 보았다가

밥을 안치며 걸러내도 보았다가

부엌 쪽문을 열고 놓아 준다

 

천 길 낭떠러지를 어떻게 내려갈까

 

볕 좋은 화단 그늘에 쌀을 넌다

세 들어 살던 바구미들이 스멀스멀 나온다

한발 한발 난간을 오르다

떨어지기를 되풀이한다

 

가만 손으로 쓸어 담아

채송화 겨드랑이에 넣어 준다

 

내가 잃은 건

겨우 쌀 두어 줌,

개운한 하늘이 덤으로 왔다

 

시 ‘쌀바구미’를 읽는 내내 햇살과 채송화와 밥 안치는 손길이 느껴져 마치 마루에 앉아 그 풍경을 바라보는 듯 마음이 평화로웠다. 무엇보다 행간으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바구미들이 말줄임표 같아서 표현 너머의 풍경으로 따라 들어가게 된다. 시는 말하지 않은 것까지를 말하는 것이므로 표현의 절제는 오히려 이미지의 증폭을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시 ‘쌀바구미’는 담백하고 단정하고 보드랍고 향기롭다. 쌀바구미를 대하는 화자의 여린 심성이 햇살의 결처럼 느껴진다. 쌀을 안치다 말고 바구미를 쪽문 밖으로 보내주거나 채송화 겨드랑이에 놓아주는 결 고운 마음이 그대로 독자에게 전해지니 화자는 쌀 두어 줌 내주고 맑은 하늘과 읽는 이의 마음까지를 얻은 셈이다.

- 유은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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