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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산 에세이 - 치코 이야기박익산의 사람 사는 이야기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3.12.26 08:52
전 키즈맘어린이집 원장

치코가 왔다. 행복캔넬을 타고…. 2021년 7월 17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한 달 전부터 큰애의 전화가 수시로 걸려 왔다. 7월 11일로 안락사 날짜가 정해진 유기견 치코라는, 7개월 된 진도믹스견이 있는 데 임시 보호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치코는 추운 겨울 1월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하며 산에서 살다가 주민들의 신고로 3월에 보호소로 왔다. 같이 태어난 강아지 2마리도 함께 잡혀 왔는데 몸집이 작은 리타와 푸린이는 2개월 만에 임시 보호 가정으로 떠났고, 치코 혼자 남아 5개월을 보호소에 있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관심을 보이거나 아무런 문의도 없는 상태였다. 사람들을 무서워해 아직 한 번도 제대로 된 산책을 해본 일이 없고 캔넬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와 본 일이 없다고 했다. 목욕봉사자나 산책봉사자가 와도 간식만 받아먹을 뿐이었다. 3개월만 임시 보호를 하다가 사회성을 좀 배우고, 산책의 즐거움을 가르치고, 사랑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게 해주고 입양 보낼 거라고, 3개월만 데리고 있겠다고 허락해 달라고 사정했다.

아직 미혼인 큰애는 동생 둘과 평택의 작은 아파트에 산다. 지금은 11kg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클지도 모르는 진도믹스를 데려다 놓겠다는 것이다. 셋이 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데 산책은 어떻게 할 것이며 임시 보호 기간이 길어지고 지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 해봐도 막무가내였다. 그 아이의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고, 셋이 놀다가 혼자만 남았는데 안락사 날짜가 다가와 있다고…. 그래서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그래. 생명을 구하는 일이니 해보자.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고, 생각한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해보자. 엄마가 도와줄게.”

처음 집에 온 날은 온종일 켄넬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에는 아무도 안 볼 때 간식을 먹으러 살금살금 나와서 구석에서 졸고 있었다. 한쪽 귀가 젖혀져 있는, 아직도 아기 티를 못 벗은 치코는 나흘째가 되자 목줄을 하고 산책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치코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종이를 찢고 신발 뒷굽이 사라지고 청소기에 털이 쌓여가고 커튼을 뜯어버리고 슬리퍼를 물고 다니곤 했다. 하나씩 질서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제는 풀냄새를 좋아하고,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 앉아서 기다릴 줄 알고, 저녁에 퇴근한 아이들이 지쳐있을 땐 옆에 와서 가만히 머리를 기대기도 하였다. 사랑해주고 생명을 구해줬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그 사랑을 받고 위로를 받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과 통화할 때도 “치코 잘있어? 밥 잘 먹고? 산책도 잘했고?” 치코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그런데 코로나 시절이 입양에 문제가 되었다. 치코 같은 중대형견은 미국이나 캐나다등  외국으로 입양을 많이 가는 데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혀 있고 세계적으로 질병과 싸우는 때였다. 3개월로 예정되었던 임시 보호가 벌써 2년 6개월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직장 다니랴 하루 3번 산책시키랴 세 아이가 너무 힘들어했다. 그래서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치코를 돌보러 아이들에게 올라간다. 선택한 것에 책임을 다하느라 애쓰는 아이들에게 휴가를 주기 위함이었다.

네모난 상자 속의 삶이 전부인 줄 알았던 치코가 햇살을 온몸에 받고 지그시 눈을 감고 햇볕 바라기를 한다. 퇴근하는 큰애를 마중하러 가면 멀리서도 알아보고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흔든다. 한 달에 한 번씩 올라가는 나를 용케 알아보고 뛰면서 반겨준다.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신나게 산책하고 나서 느긋한 낮잠을 즐기는 걸 볼 때 더불어 행복하다. 작은 마당이 있고 사랑이 많은 분에게 입양 되어서 반려견으로서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도록 2024년을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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