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열린칼럼
윤찬영 칼럼 - 문학의 도시 익산을 위하여윤찬영의 열린칼럼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4.02.05 08:50
기찻길옆동네책방 주인장

<소라단 가는 길>은 한국 문단의 거목인 윤흥길 작가의 작품이다. 그는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어야 했는데, 그가 지나온 험난했던 유년기의 삶이 <소라단 가는 길>에 고스란히 담겼다. 윤흥길 작가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강경상업학교를 나온 엘리트였지만 강직한 성품 탓에 어디서건 오래 붙어있지 못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한 번은 어렵게 마련한 무허가 판잣집이 헐려 가족 모두가 창고에서 살아야 했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 바로 이곳 익산이다(고향은 익산에서 멀지 않은 정읍이다).

윤 작가가 전주사범학교를 나와 처음 발령을 받은 곳도 익산의 춘포국민학교였다. 숙직실에서 어느 작가의 신춘문예 당선 기사를 보고는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고, 2년 뒤 그는 정말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 살, 원광대 국어국문과에 들어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제목에 나오는 소라단은 지금의 소라산 안 소나무가 가득했던 숲을 가리킨다. 소설에는 소라단 말고도 신광교회, 이리시청, 익산군청, 만세주장 등 그 시절 이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는 이름들이 곳곳에 나온다. 또 역사에서 잊힌 1950년 7월 미군의 ‘이리역 오폭 사고’, 한때 고무신 시장을 주름잡았다는 ‘천일고무’ 이야기도 나오고, 이곳이 피란민을 따뜻하게 품어준 도시였다는 사실도 일깨워주고 있다.

<기찻길 옆 동네>를 쓴 김남중 작가는 1972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쯤 되면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가 쓴 <기찻길 옆 동네>는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를 배경으로 한다. 지금은 잊힌 ‘현내’라는 이름도 나온다. 책을 읽다 보면 어렴풋이나마 그 시절 익산을 거닐어볼 수 있다.

김남중 작가는 2004년에 이 작품으로 제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창작 부문 대상을 받았다. 2006년엔 동화집 <자존심>으로 ‘올해의 예술상’을 받기도 했고, 장편동화 <불량한 자전거 여행1-3>은 모두 베스트셀러다.

익산을 다룬 소설 가운데 익산 출신이 아닌 작가가 쓴 작품들도 더러 있다. <1938년 춘포>는 우리가 애써 지워버린 일제강점기 익산 대장촌의 풍경에 숨결을 불어 넣은 작품이다. 일본인 농장에서 소작을 하던 평범한 조선 농부 가족의 삶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고, 긴 가뭄에도 논 옆을 지나는 대간선수로 물길을 지켜볼 수밖에 없던 그들의 아픔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삼남극장>은 ‘이리역 폭발 사고’를 앞두고 있던 1977년 늦가을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역에서 5분만 걸으면 닿던 삼남극장에선 하필 그날 ‘하춘화 리싸이틀’이 한창이었고, 천장이 내려앉는 바람에 6명이 죽었다. 이 소설엔 폭발로 사라지다시피한, 판잣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는 철인동의 모습이 나온다. 사고가 난 뒤엔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그곳에서 어떤 아귀다툼이 벌어졌는지도 보여준다.

이들 작품들을 읽고 나면 이 도시가 달리 보인다. 애틋하고 대견스럽다. 그래서 이 도시가 걸어온 이야기가 담긴 작품들은 소중하다.

익산의 특산품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익산이 낳은 작가와 작품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윤흥길 작가와 김남중 작가를 비롯해 최기인, 양귀자, 박범신, 안도현, 유강희, 박성우, 김경주 등 한국 문단에서도 손꼽히는 여러 문인들이 원광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오죽하면 ‘원광대 문학사단’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1938년 춘포>와 <삼남극장>처럼 익산을 다룬 작품들도 익산의 특산품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이들 작품들이 익산 시민에게조차 더는 읽히지 않을뿐더러 더는 이 도시를 다룬 작품이 쓰이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서울ㆍ수도권 밖 지역의 인구가 해마다 가파르게 줄면서 사람들을 불러들일 매력적인 도시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도시 브랜딩은 멋들어진 슬로건을 붙인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다. 도시 정체성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에 어울리는 비전을 시민이 함께 만들어갈 때 비로소 모두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는 도시 브랜드가 탄생한다.

익산을 ‘문학의 도시’, ‘이야기의 도시’로 브랜딩하는 건 어떨까. 마침 익산은 ‘문화도시’에 선정된 지 3년째를 맞고 있다. 지역 작가들을 언제든 만날 수 있고, 그들이 쓴 작품이 널리 읽히고, 작품에 등장하는 도시 곳곳에 멀리서도 독자들이 찾아오는 풍경은 멋지지 않은가. 또 한때 한국 문단을 주름잡았던 ‘원광대 문학사단’의 전통을 시민 작가들이 이어간다면 그 또한 멋진 일일 것이다. 올해는 작은 책방의 주인장으로서 ‘문학 도시 익산’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해볼 생각이다.

익산열린신문  ikopen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익산열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익산열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570-986 전북 익산시 목천로 283 201호(인화동 2가 90-3)  |  대표전화 : 063)858-2020, 1717  |  이메일 : ikopennews@hanmail.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라북도, 다 01281  |  등록일자 : 2013년 10월 17일  |  발행인 겸 편집인 : 조영곤  |  청소년보호책임자 : 조영곤
Copyright © 2024 익산열린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