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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규 칼럼 - 단하소불(丹霞燒佛)송태규의 열린칼럼
익산열린신문 | 승인 2024.02.19 08:50

심지창의융합교육원 대표

시인

입춘이 훌쩍 지났다. 햇볕이 기웃거리지 않는 작업실 온도계가 낮은 쪽 한자리에서 맴돈다. 엉덩이 덕이나 볼까 하고 시린 손을 엉덩이 아래에 깔면 엉덩이는 체온으로 화답한다. 혼자 책 보고 글 쓰는 작업실에 난방은 사치라며 조끼를 껴입고 무릎 담요를 덮었다. 지난달 날아온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 내 참을성 없음을 후회했으니까.

당나라 때 승려 단하(丹霞)가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하다 저녁 늦게 낙양(洛陽)의 혜림사(慧林寺)에 도착했다. 손님을 안내하던 사람이 단하가 늦게 왔다고 밥도 주지 않고 불도 때지 않은 객실에서 잠을 자라고 했다. 때마침 겨울이라 날이 추워서 단하가 법당에 모시는 나무부처(木佛)를 들어다가 도끼로 패서 아궁이에 넣고 몸을 녹였다.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 주지가 이 모습을 보고 달려오더니 펄쩍 뛰며 고함을 질렀다. 마침내 절의 대중이 다 잠에서 깨어 법석을 떨었다. 주지가 꾸짖으며 말했다.

“거룩한 부처님으로 군불을 때다니. 불제자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그러자 단하선사는 막대기로 재를 헤치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이 절의 부처가 하도 용하다 해서 불에 태워 사리(舍利)를 얻으려던 참입니다.”

그러자 주지는 더욱 화를 내며 대들었다.

“이 땡추야! 목불에서 무슨 놈의 사리가 나온단 말이냐?”

주지는 그 말을 자신의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아~~~! 하고 깨달았다. 그리고 단하선사 앞에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 아침저녁으로 공양을 드리며 절을 하고 빌었던 대상은 부처가 아닌 한갓 나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었다. 단하소불(丹霞燒佛)의 유래다. 어떤 형상에도 집착해 사로잡히지 말 것을,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함을 단하 스님 일화는 보여준다.

부처님은 하늘에 박힌 달을 가리키는데 사람들은 그 손가락만 바라본다. 정녕 살펴야 할 핵심은 헤아리지 못하고 눈앞의 것만 좇으니 제각각 생각이 나아갈 방향을 잃고 헤맨다. 고정관념과 해묵은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삶의 가치와 본질적 요인이 무엇인지 먼저 살피는 혜안이 필요하다.

지금 정치권의 발등에 떨어진 과제는 나라의 미래가, 국민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둘러보아야 할 일이다. 살림이 팍팍한 서민은 시린 손과 발을 동동 구르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민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은 어디에 있는지 손가락 끝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 담배를 피우다가 기도하는 것과 기도를 하다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순서만 다른 게 아니라 접근하는 자세부터 다르다. 사건의 본질이 몰카인가 명품백을 받고 나서 시치미 뗀 행위인가. 국민의 손가락은 하늘에 박힌 명품백을 가리키는데 용산은 끝내 손가락 끝 몰카만 바라보라고 눈알을 부라린다.

‘화장품이나 핸드폰 따위의 간단한 소지품을 넣는 작은 가방’. 국어사전에서 풀이한 ‘파우치’의 뜻이다. 대통령 부인이 받은 명품 핸드백을 명품백이라 부르지 못하고 파우치라 부르며 애써 국민의 눈을 손가락 끝으로만 돌리려는 KBS는 현대판 홍길동인가.

여전히 서민들의 안방은 냉골이다. 불상을 태워서라도 민심을 데우는 일이 절실하다. “뭣이 중헌디? 갑자기 한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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