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 래

최정민

눅눅해진 우리 사이만큼의 침묵을

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을까 합니다

눅눅해진 공기처럼

서로에게 스며든 과정보다 더욱 지독하게

침묵은 빠질 생각이 영 없습니다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쨍쨍한데

그늘은 아직도 젖어있습니다

마르지 않은 우리 사이만큼의 시간을

빨랫줄에 널었습니다

고추처럼 삐쩍 말라버린 우리의 관계는

구겨진 채 펴질지 모르는

옷의 주름만 같습니다

덜 마른 침묵의 냄새는

서로에게 스며들지 못한 채 지독하게

빠질 생각이 없나봅니다

유은희 시인

사람과의 관계를 빨래를 널어 말리는 과정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정이겠지만 누구나 이렇게 시적으로 구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눅눅해진 사이를 바짝 말리고 싶어 하지만 복잡미묘한 관계에서 오는 침묵은 잘 마르지 않는 빨래와도 같다. 혹은 빠짝 마를지라도 마음속 깊이 구겨진 주름,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은 안고 살아야 할 몫이기도 할 것이다.

갓 스물이 쓴 시가 사뭇 깊다. 시를 공부하고 싶다고 찾아왔을 때 시는 치기나 멋이 아니라 삶의 즙이라는 걸 스물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골똘히 시의 길로 드는 이 아름다운 젊음에게 한걸음 앞서가며 흔들리지 않는 디딤돌이 되어주려 한다.        

- 유은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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